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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Sep 23. 2018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그 어딘가

[서평] 어떻게 살 것인가, 올바른 삶에 대한 당대 지식인의 성찰 엿보기

약 3년전쯤 이었나 싶다. 그때만 해도 같이 살던 형이 어느 날 책을 사왔고, 하릴없이 뒹굴거리던 어느 날 그 책을 집어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 제목이었다.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던 책이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한 호흡에 다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색안경을 삐딱하게 낀 채로 책을 보기 시작했건만, 이 책은 작가로서의 유시민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념이나 진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기자, 상식에 대한 이야기다. 

생각해보건데, 드러난 것 뒤에 감춰진 쇼맨십이랄까. 설령 그런 것 있으면 뭐 어떠한가마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이란 건 정말 빡빡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느낀 감상이었다. 수만가지 단점을 덮는 몇 안되는 장점으로 티비 속 연예인을 바라본다면, 역시나 수만가지 장점을 덮는 몇 안되는 단점으로 정치인을, 그리고 누군가를 규정짓는다. 그럼에도, 이 분의 문체가, 어투가, 문장력이, 필력이 마음에 드는 건, 글은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수단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 아무리 감추려, 포장하려 해도, 글은 곧 그사람을 가장 극명히 드러낸다는 단순한 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리라.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와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사 전부에 걸쳐 조언 혹은 지침을 건네는 글이다. 제 1장 어떻게 살 것인가는 청년에게 건네는 그의 조언처럼, 제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중장년 및 노년층을 위한 그의 고언으로 들린다. 다른 장들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거쳐온 풍파를 통해 느낀, 자기만의 성찰과 지혜를 공유하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인 유시민이라기보다 작가 유시민으로,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거친 풍파를 거친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격려와 응원, 위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섣부른 격려와 알맹이 없는 응원, 그리고 진심없는 위로는 상대에게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 겉치레 같은 응원대신, 작가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좋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므로, 또한 인생에서 경쟁이라는 건, 탈락했을 때 흘리는 눈물의 양을 겨루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벽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후회없는 노력을 정당화 하는 인생의 이면엔 어느 누구도 실패의 결과를 책임져 주지 않는 다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두, 세번 주어지는 인생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 단 하번의 인생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세상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너무나 많다.
곳곳에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서있다.
도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와 넘을 수 없는 벽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어떻게 살 것인가 中>

직업에 대한 공감가는 성찰도 눈에 띈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제 취업의 문 앞에 선 대학생들, 이미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회사원들 모두 생각해 볼만하다.

일이 즐겁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일을 하는 구체적인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워야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中>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작가 유시민은 삶에 대한 자기주도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우리 모두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100세가 되도록 의료기기와 링거, 여러 호스를 몸에 단 채로 침대에서 연명하는 것이 과연 본인이 원하는 삶일까. 자기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 혹은 의사의 도덕성에 기대어 연명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 선택은 본인의 몫이기에,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적어도 미리 본인의 기준이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혹시나 본인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을 먼 훗날을 대비해서 말이다.  


정치인 '유시민'이 불편한 사람이라도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앞서 언급했듯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지식인이자 작가 유시민의 입장에서 그가 집약적으로 쌓아온 삶의 지혜들을 하나하나 풀어 설명해 주기 때문에, 어느 꼰대의 뻔한 설교처럼 속에서 부대끼지 않는다. 더불어 허투로 쓴 문장 하나 없는, 내실 있는 문장들로 가득한 좋은 글쓰기의 표본을 보다보면 책읽는 즐거움 역시 만끽할 수 있다.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훌륭한 삶, 품격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 남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큰 가치가 있다. 아직 젊은 사람일수록 더 깊이 있게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정답은 모른다. 그저 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살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中


작가 유시민처럼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생각과 사유의 흔적을 고스란히 꺼내보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 능력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 저 단어', '맞어 저 문장'. 말하고 싶었던, 혹은 쓰고 싶었던 구절이 흡사 머릿속에서 복사되어 나온 양, 무릎을 치게 만든다. 문장들 정말 근사하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문장이라도 몇 번씩 곱씹게하는 힘이 느껴진다. 화려한 글쓰기는 좋은 글쓰기가 결코 아니라는 단순한 명제를 잘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인생, 행복한 삶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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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中>


번외로 이야기하자면, '유시민'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항소이유서'일 것이다.


이 분의 항소이유서는 전문도 전문이거니와 마지막 글맺음의 문단은 정말 (내 기준엔) 명품같은 문단이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마음에 쏙 든다', '근사하다'란 표현도 모두 부족하다. 옥중에서, 참조할 여타의 책들도 없이 이런 글들을 써내려간 그의 필력과는 별개로, 어찌 이리 한글자 한글자에서 구구절절한 진심 이리도 담을 수 있는지. 비범하지 않은 단어가 없고, 경탄하지 않을 문장이 없다 느낀다. 왼편 오른편 정치색을 떠나 한 세대를 풍미하는 지식인의 세계라는 건 좌우지간 정말 근사하지 않나. 아직 읽지 못한 이가 있다면, 


찾아서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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