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닥다리 에디 Oct 29. 2020

사실 우리는 모두가 다정한 사람들

강화길 작가님의 '다정한 유전'을 읽고 생각해 보는 우리 안의 다정함

그녀의 글에는 늘 긴박함이 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상황과 이야기 전개일지라도,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며 읽게 된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된 '음복'에서 감탄한 그녀의 필력은 이 책 ‘다정한 유전’에서도 여전하다. 처음엔 갸우뚱하며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점차 읽다 보니 퍼즐이 조각조각 맞춰진다. 읽다 보니 흡사 공포영화와도 같이 느껴졌던 ‘음복’이었건만, 이번 책은 흡사 게임과도 같다. 읽는 내내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야기 도처에 깔려 있는 단서들을 조합하다 보니 어느새 결말에 이르는, 그런 퍼즐게임과도 같은 이야기.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기도 했지만 강한 몰입력 덕에 순식간에 완독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시골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등장한다. 다른 이들은 환경에 순응하고 묵묵히 사는 그 삶이, 이들에겐 무어 그리 답답한 굴레처럼 느껴졌던 걸까. 각자 처해있는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들은 각자 글을 쓰게 된다. 더 좋은 삶을 쟁취하기 위한 글, 경쟁으로 시작한 글이었을지 몰라도 글을 통해 이들은 서로를 향한 다정한 마음을 알게 된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은 아이러니한 감정. 원치 않아도 우린 서로에게 이미 얽히고설킨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듯하다.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 <다정한 유전> 中


정확히 말하자면 이 독후감은 책을 두 번째 읽고 쓰는 내 감상문이다. 더듬거리며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출구가 눈 앞에 보였다. 어리둥절한 마음에 다시 입구로 거슬러 올라가며 작가 강화길이 의도한 장치들을, 숨은 의도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었다. 반복해서 읽으니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 더 선명해 보였다. 선명해진 만큼 내 이해의 폭도, 그리고 공감의 정도도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타인의 입장에, 그 감정에 몰입하기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볼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우리는 원치 않아도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며 교감한다. 아무리 세상이 파편화되고 개인주의가 극심해진다한들 함께 교감하는 그 무대가 변할지라도 이 단순한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때론, 이 단순한 명제가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연결성 때문에 우린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호소할 때 더러 있기 때문이다. 면전을 넘어 익명성 뒤에 숨어 서로를 향해 날 선 말들 내뱉거나 겁박하는 일들을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밖으로 분출된 마음은 다툼으로 번져 쉽게 불타오르거나, 반대로 털어놓지 못한 마음은 병이 되곤 한다. 화상(火傷), 혹은 내상(內傷). 상처는 필연적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다툼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연결을 통해 우린 치유되고 회복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숙명과도 같은 운명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듯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복수를 다짐하는 마음.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원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 <다정한 유전> 中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공감에 이르기를 의도하며 무심하게 짠 듯한 무대와도 같다. 읽는 이에 따라 책의 제목인 ‘다정한 유전’이 누군가에겐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삶의 매 순간이 힘겨운 어느 누군가에겐, 혹은 철저히 고립되어 외로운 마음 가득한 어느 이에겐 아직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주 조금의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고, 그렇게 느낄 겨를도 없었지만, 실은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들이었노라며.

모든 책이 그러하겠지만,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 해답을 도출하는 과정이 곧 독서의 재미이자 묘미가 아닐까. '그럼에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공감하고 동의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함께 읽기를 권하는 이유이자, 이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미니스트', 불편한 단어 너머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