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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Sep 06. 2020

'페미니스트', 불편한 단어 너머의 세계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 친구'에서 확인하는 낯부끄러움

'책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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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막 출간되었던 그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책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라고 생각했었던 당시였다. 제목에서부터 파격이 느껴졌지만 이 격한 표현을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시류에 잘 편승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 같은 쫄보에게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지나치게 깊은 젠더에 대한 이야기는 읽기에 가슴 떨리는 일이므로, 당시엔 그저 '기깔나게 제목을 지은 책',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잘 포착해 낸 그럴싸한 소설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다 요 근래 어느 누군가의 책 추천을 통해 비로소 진득하게 읽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단지 제목만 기깔난 책이 아니라 내용 역시 내 좁은 편견과 식견을 훨씬 상회하는, 그런 책이 되었다. 제목만 가지고 쉽게 볼 책이 결코 아니다.

이야기는 남자 주인공 승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승준은 평범하면서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스펙의 직장인이다. 적당한 자신감으로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 않으며 나름의 쿨한 연애를 지향하는 보편적인 남성상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권위적이지도 않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알며 상대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준수한 남성 말이다. 다만 4년 전에 헤어진 예전 여자 친구를 아직도 이따금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승준이 유학을 떠나는 당일 그에게 헤어짐을 고함과 동시에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 후로 어느덧 4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페미니즘 시위가 한창이던 광화문에서 그는 그녀와 우연히 조우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코웃음 치는 승준이었으나 여전히 그녀를 마음 한 켠에서 추억하던 그는 다시 연애를 시작해보자고 그녀에게 고백한다. 페미니스트 건 뭐건 다 상관없다며 말이다.


이후 둘은 연애를 하며 사사건건 서로 부딪히곤 한다. 별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그녀는 늘 분개하고 화를 냈고, 이에 승준은 어리둥절 하기 일쑤다. 그녀를 칭찬하려고 하는 말이나, 혹은 그녀를 위한다고 하는 말들에 그녀는 승준의 몰상식을 탓한다. 처음엔 전혀 이해 못하던 승준은 그녀와의 연애를 통해 아주 조금씩 스스로 안에 내재되어 있던 성의식과 잘못 고착화된 고정관념을 차츰 돌아보게 된다. 아주 천천히일지라도 속도보다 중요한 건 변화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 이를 향한 저자의 바람이 책 곳곳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건, '저자가 과연 남성일지 혹은 여성일지'에 대함이었다. 주인공 승준이 (본인도 모르게) 갖고 있는 성에 대한 무지한 감수성을 놀라울 정도로 표현했음은 물론 남성의 눈으로 보는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전체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걸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실제 주위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이야기인가 싶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극사실주의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그런 이야기다. 한남, 메갈 등 온라인 상에서 쓰이곤 하는 예민한 단어들이 곧잘 등장한다. 누군가에겐 읽기 불편한 단어들일 수 있으나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현상에도 귀를 기울어야 한다. 피하기만 해선 본질에 결코 다가갈 수 없다. 표피에 덕지덕지 붙은 불편함 아래로 들어가 보면 내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내겐 이 책이 마치 수면 아래 세상으로 가는 열쇠와도 같았다.


또한 한 편으론 책을 읽으며 서글퍼지기도 했다. 이야기들의 재료이자 모티브가 되어주었다는 저자의 연애사가, 또 그녀가 겪은 경험들이 특출 난 어떤 것이라기보다 굉장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이었을 거라는 뼈아픈 사실이 말이다. 극소수가 경험하는 일들이라고 누군가는 여전히 폄하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작정하고 설득하는 책이 결코 아님에도, 역설적이지만 그런 설득력이 이 책엔 들어있다. 기가 막힌 설득의 묘가 책 곳곳에 내포되어 있다.

남자 주인공 승준은 사실 우리 대부분과도 같다. 


소수라고 하고 싶지만 실은 대부분이 아닐까. 약자가 겪어야만 했던 현실에 무지하고, 또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은연중에 누리던 많은 것들 중 어느 하나 양보하길 꺼려하는, 그런 우리의 모습이 승준 속에 표현된 듯하다. 극단적 행동과 비방은 물론 여전히 지양해야 하지만, 그들의 왜 그렇게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우린 조금이라도 살펴야 하지 않을까. 모든 분쟁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현실적인 대안에 앞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위로, 그것부터가 아닐는지. 그러나 아직은 대다수의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서툰 것 또한 사실일 게다. 마치 주인공 승준과도 같이.


결론 역시 마음에 들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가장 극적이기도 했다. 승준의 마음속에 생긴 약간의 불편함이야말로 현실과 상상, 혹은 저자의 바람 그 모두를 표현한 아이러니 그 자체로 보였다. 역설과 풍자 가득한 소설이기에, 이 책을 건성건성 읽었다간 저자가 의도한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 부디 주의 깊게 모든 것을 의심하며 읽기를.


어느 누군가가 목에 핏대 세워가며 열심히 외치는 이유가 뭘까. 


왜 누군가는 그토록 억울해서 무언갈 말하려고 할까. 퇴근하고 쉬거나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그렇게 소비해야 할 만큼. 무조건적인 혐오와 대화 결여된 배타적 태도는 우리 모두 지양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누군가가 겪었다던 억울한 일, 가슴 아팠던 기억,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무언의 차별이 있다면 먼저 이해해주고 귀를 기울여주는 일이 먼저라고. 혐오와 차별의 해결은 그리 먼 길이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토론의 기술과도 같은 책, 소설 같지 않은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 개인적으로는 재미나게 읽었던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가 문득 떠올랐다.

 

저자 민지형, 그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떤 풍자와 해학으로 허를 찌를지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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