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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Dec 19. 2020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삼국지’에서 배웠다

“넷플릭스에 삼국지가 있어?”

“그거 되게 구닥다리 영화 아니에요?”


넷플릭스에서 볼만 한 영화나 드라마를 친한 동생 녀석이 추천해달라기에 삼국지를 추천해줬더니 이 녀석이 대뜸 면박을 준다. ‘삼국지라니, 그거 구닥다리 아니냐'며. 잔뜩 고심하며 추천해 준 내 성의가 무색하다 못해 콘텐츠의 진면목보다 연식을 따지는 이 동생 녀석의 말이 가관이다. 읍참마속이라 하여 기가 차 울면서 이 녀석의 조동아리를 내려치고 싶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말한다.   


“너도 거진 출시된 지 삼십 년이 지났으니 너야말로 구닥다리 아니냐?”



오래 보아야 그 진면목을 아는 것들이 있다. 시류와 유행은 겉보기엔 좋으나 지나고 나면 황망하다. 순간의 자극은 있되 남는 것이 그리 크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모두 다 그러한 것은 아니나 대체로 그렇다. 유행이라 불리는 그 바람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어느새 열광하던 사람들 태반이 사라지고 없으니 말이다. 특수효과와 유명 배우에 극찬하던 사람들이었건만 그 의리와 정은 그놈의 시류에 발맞춰 변덕이 죽 끓듯 하여, 고전과 명작이 이들에게 당최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다 각자의 입맛이 다르듯, 좋은 콘텐츠를 규정하는 정의 또한 다름을 나 또한 모르지는 않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유행의 속도와 변화의 정도가 몹시도 극심하니 이렇게 목 놓아 외친다. 좋은 콘텐츠는 때론 아주 가까운 곳에 이미 놓여 있었노라고. 그러니 고전 명작에서 진국처럼 우러나오는 재미를 찾아보라고. 넷플릭스 볼 때마다 볼 거 없다고 읊조리며 새로운 콘텐츠의 출시만을 기웃거리는 이들에게 말이다.

나 어릴 적엔 취미가 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독서’라는 대답이 마치 자동자판기처럼 튀어나오던 때였다. 책은 가장 고루하면서도 대중적인 매체였다. 그 중에서도 유비, 관우, 장비, 특히나 관우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상식이라고도 일컬어질 정도로 삼국지는 대중적인 콘텐츠였다. 신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 중에서도 유달리 특출 나게 재미난 영웅담이 그리 없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천에 재미난 것들이 널렸다. 넷플릭스만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리지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매 달 신작들이 선을 보인다. 그러나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몇 없다. “뭐 볼 거 없냐?” 같은 말을 늘 반복한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달리해보면, 새로운 것만이 능사는 아님을 알게 된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이 바로 아주 좋은 그 예시다. 중학교 다닐 적 처음 읽었던 그때와 대학에 갓 입학했던 이십 여전 전, 그리고 요 근래 넷플릭스에서 다시 정주행하고 있는 '삼국지'가 바로 그렇다. 중학생 시절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 나 또한 분연히 친구들과의 평생 우정을 다짐했고, 머리 좀 커진 대학생 시절 다시 읽은 삼국지에선 간웅 조조의 처세를 통해 인간관계와 정치의 미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 마흔에 가까워 넷플릭스에서 조우한 중국 드라마 삼국지에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돌아보게 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난 회사생활과 사회생활을, 그리고 그것을 넘는 삶의 의미와 가치까지도 발견한다. 수십 번도 더 접한 이야기건만, 여전히 새롭다. 아는 사람은 아는 그 신묘한 힘, 고전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그런 힘이 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로 출발한(실은 그전부터 이미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삼국지는 이후 약 백 년 가까운 시간에 걸친 방대한 대서사를 담고 있다. 실제 이야기는 백 년도 더 넘는 세월을 담고 있지만 이 시대를 풍미한 등장인물들이 활약하는 건 채 50년이 되지 않으니, 이 몇십 년 동안을 주요 배경으로 넷플릭스 속 중국 드라마 ‘삼국지’가 펼쳐진다. 총 95화로 이루어진 이 ‘삼국지’는 지금까지 개봉한 다른 여타의 삼국지, 특히 영화와 비교해서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인물 묘사에 있어선 되려 드라마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영화 이상의 디테일을 표현하고 있기에 영화를 넘어 책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웅장함과 단시간의 임팩트는 영화에 다소 뒤처질지언정 가장 책과 흡사한 정도의 표현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 덕분에 아직 삼국지 책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삼국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과 재미를 넷플릭스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황건적의 난에서부터 폭군 동탁의 등장. 당대 최고의 무인이라던 여포와 초선의 사랑 이야기, 또 이를 둘러싼 계략과 암투까지. 삼국지의 진면목은 본격적인 주인공들의 등장 이전부터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방대한 세계를 모두 담은 만큼 다양한 등장인물들로부터 각기 다른 서사와 갈등이 펼쳐지므로 보면 볼수록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삼국지를 소재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있지만, 이 넷플릭스 속 중국 드라마 삼국지에서 특히나 주목할 만한 점을 논하자면, 바로 ‘조조’의 재해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천자를 핍박하며 폭정을 휘두르던 종전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난세를 호령하는 당대의 영웅으로 조조에 애정 어린 시선을 듬뿍 담았다.


혹자는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어 각색된 소설 삼국지 속 인물이 과장되고 허황되었다 말하지만, 출발 그 자체가 이미 ‘정사’에서부터 각색되고 윤색된 '소설'이기에 진실에 큰 힘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설령 진실이 궁금하더라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역사학자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궁금한 건 실제 조조에 대한 진실이 아닌, 소설 속 그리고 드라마 속 조조의 이야기에 있으니,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어 ‘조조’는 그렇게 살아있는 캐릭터가 된 셈이다. 지금 이 현실에서도 바로 살아 숨쉴 것만 같은 그런 캐릭터 말이다.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자룡까지 얻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지략이 없어 늘 도망만 다니던 유비가 당대의 인재였던 제갈공명을 얻고자 세 번 걸음 하여 겨우 그를 군사로 삼았다고 하는 삼고초려 일화에서 부터, 역적 동탁에게 쫓기던 중 순간의 오해로 자신을 아들같이 아끼던 여백사를 비롯한 일가족을 몰살시키며 내뱉었다던 저 유명한 대사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진 않을 것이오.’ 라거나, 동탁의 수하인 적장 화웅의 목을 베고 난 후에도 식지 않은 따끈한 술을 마셨다던 관우의 일화 등, 매 회마다 허투루 볼 내용이 없다. 빠져들어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또한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처음 삼국지를 접했을 때의 감동과 대학생 시절 때 읽었을 때의 감상, 그리고 요 근래 넷플릭스 속 삼국지를 시청하며 느낀 소회는 각기 달랐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와 우선순위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요,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과 관점 또한 변화하고 있는 덕분이 아닐까. 조조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가겠다고 고집하며 본인을 포함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유비의 리더십은, 그가 말하는 ‘인덕’이 아무리 중하다 한들 능력이 받침 되지 않는다면 가지지 못한 것이 되려 낫다는 교훈을 내게 상기시켜 주었다. 난세의 간웅이라 뭇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만 본인을 죽이려 한 적장임에도 그 능력을 우선하여 자신의 인재로 발탁하는 그의 배포와 도량이 오히려 유비의 ‘인덕’과 ‘인의’ 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때론 삼국지에 등장하는 각 등장인물들 속에서 나의 치기 어린 과거가, 그리고 현재가 보이기도 하고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리고 정치가 투영되어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군법을 지켜 모두에게 본이 되고자, 아끼는 제자이자 신하인 마속의 목을 제갈량이 울면서 베었다고 하여 붙여진 사자성어 ‘읍참마속’의 일화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와 그 엄중함에 대해 씁쓸한 우리의 현실이 생각나기도 했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007 제임스 본드에서부터 어벤저스까지.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최신 영화와 드라마는 늘 주목을 받아왔다. 마치 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듯한 특수효과와 더불어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신 즐비한 영화들이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세월 지나 다시 봤을 때, 처음 봤을 때의 그 감동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큰 세계관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 쉬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난 물론 있지만, 결국 단 몇 사람의 출중한 능력으로 이 세계는 평화로워진다. 우리 모두 결국 모든 이야기의 끝에 평화가 있다는 걸 알고, 또 기대하며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셈이다. 때문에 재미는 있지만 그 재미가 끊임없이 살아 변주되진 않는다. 다만, 그렇기에 영화 같고 드라마 같다.

반면 이 삼국지는 소설을 기반으로 하였음에도 마냥 소설스럽지 않다. 어벤저스가 악당 타노스를 결국 물리치듯, 당대의 인재 제갈량이 있다한들 유비가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는 것도 아니요,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유비가 마침내 난세의 간웅 조조를 물리치고 천하를 제패하는 것 또한 아니다. 반대로 당대의 영웅들 있지만 그놈의 ‘인의’가 번번이 유비의 발목을 잡는 덕에 그의 패업은 늘 번번이 실패로 귀결되기 일쑤다. 적벽대전 이후 작은 승리들이 있다한들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다. 초반에 벌어진 땅과 물자, 인재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벌어진다. 마치 우리네 삶처럼, 극적인 반전과 맹목적 해피엔딩 없는 우리네 모습처럼 말이다.


때론 삼국지 속 우유부단한 유비가 나와 같고, 때론 비열한 조조가 나와 같으며, 제갈공명을 시기 질투하는 졸렬한 주유가 나와 같다 느꼈다. 그들 모두에게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95화를 정주행 하며 나는 조조가 되어 난세의 간웅이 되기도 했고, 패배를 거듭하다 공명을 만나 기사회생하기도 했으며 주유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구닥다리 이야기임에도 볼 때마다 새롭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있지만 우리네 삶을 관찰하는 기분, 그렇기에 계속 곱씹고 반추하게 된다. 내 모습을 말이다.


이만하면 볼만하다 느끼지 않을런지, 나처럼 삼국지 속에서 활약하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 혹은 좌절하는 당신을, 때론 작은 승리에 기뻐하는 당신을, 치졸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당신 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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