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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Apr 14. 2021

결혼을 했다 우리가 만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코너에 있어도 될 영화 '결혼 이야기'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강렬한 만남에서부터 격정적인 시간을 거쳐 (운이 좋다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야기. 물론 세상만사 늘 기꺼운 일만 있을 수는 없으니 아주 사소한 트러블은 필연적이라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운이 좋다면) 사랑의 결실은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고 서약하며,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서로의 동반자적 삶을 시작하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라고 귀결되면 요즘 시대에 그건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가 된다. 그 대신, '그리고 그들은 싸우고 다투기를 거듭하며 서로의 좁혀지지 않는 성격 차이를 확인한 뒤 이혼에 합의한다.'로 귀결되어야 '현실적'이며 '일반적'인 결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혼이 대수롭지 않은 시대라 별스러운 일도 아닌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결혼'으로 가는 장밋빛 길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많을지언정 '이혼'으로 가는 가시밭 길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딱히 손에 꼽기 힘들다.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가 '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기 때문일까. 우리 모두 극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손에 쥔 채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그런 관객들도 있기는 하다.)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유추해 본 내용은, 결혼에 이르는 눈부신 과정을 표현한 로맨스 영화였으나, 실제로 맞닥뜨린 영화의 실체는, 말 그대로 '결혼 이야기' 그 자체였다. 두 남녀를 향해 비추는 핀 조명도, 그 불타는 마음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주옥같은 대사 없이 그저 두 남녀의 결혼 생활을 묵묵히 담고 있다.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군데군데 잘 심어놓은 덕분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로써의 가치 또한 잘 담아냈다.


언뜻 보면 별다른 문제없이 (물론 사소한 트러블이야 있긴 하지만) 사는 듯 보이는 니콜과 찰리는 10년 간의 결혼생활을 함께 한 부부다. 영화 초반부, 카메라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각자의 일에 대한 목표와 책임감을 비춘다. 부부관계 개선을 위한 심리상담 등, 극 초반부 이들은 여느 부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좁힐 수 없는 간극으로, 이들은 곧 이혼을 앞두고 있으며 절차 상의 사소한 협의만이 남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의 감정을 크게 상할 만큼의 갈등이 있던 게 아니라 사소한 '성격 차이'가 이혼의 사유이기 때문에 이들은 각자 변호사 없이 협의이혼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니콜이 우연찮게 변호사를 소개받으면서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


찰리는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나름) 재능 있는 프로듀서다. 그의 아내 니콜은 그런 그의 옆에서 극단의 일원인 배우로의 삶을 살고 있는 동시에 원치 않아도 최대한 그를 배려하며 양보한다. 원치 않는 뉴욕살이도 그를 사랑하고 지지하기에 내렸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를 배려할수록 니콜의 마음속 공허함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의 성공에도 그 마음속 구멍은 쉬이 메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혼을 결심한다.


아주 사소한 갈등에서 촉발된 이혼이라고 생각했지만, 각자의 변호사를 통해 양육권을 쟁취하고자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들은 서로에게 흠집을, 그리고 어떻게든 커다란 함정을 만들어 곤경에 빠뜨리고자 한다. 처음엔 아름다운 이별을 바랐던 이들이지만, 점차 싸움은 격화된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강요하는 배려와 양보, 그리고 희생


가족의 일원으로 서로를 의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의지하는 무게를 더해갈수록, 그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상대방은 고통이 쌓인다. 처음엔 고마워하던 이도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상대방의 양보와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기 쉽다. 처음에 느꼈던 감사는 온데간데 자취를 감추기 십상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니콜과 찰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이혼을 꿈꾸던 이들이지만 점차 이혼 과정은 전쟁이 되어만 간다. 가능하면 더 깊은 상처를, 더 많은 치명상을 입히려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려하던 예전 기억은 어느새 상대방을 공격하기 아주 유용한 도구로 돌변했다. 이들이 함께 한 추억은 점차 옅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이 역시 결혼의 일부분이라는 듯 몹시 현실적으로 이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결혼하여 함께 살며 사랑을 쌓아 올린 만큼, 이별 역시 쌓아 올린 그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필연적인 걸까. 아름다운 이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결혼 이야기'라고. 사랑을 함께 쌓은 만큼 미움과 증오의 감정마저도 함께 쌓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감정이 한껏 격해진 이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아는 만큼 서로를 비난하며 싸운다. 잔뜩 날 선 저주를 퍼붓던 찰리는 서로를 죽일 듯이 헐뜯는 이 상황에 일순 오열하며 주저앉는다. 그런 찰리를 니콜은 말없이 보듬는다. 그리고 영화는 이 아이러니한 장면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만, 이혼은 과연 누구를 위한 승리일까.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사랑의 크기를 키우는 만큼 서로를 향한 증오의 씨앗 역시 함께 자라나게 마련이다. 시간을 통째로 돌리지 않는 한 이 씨앗이 자라지 않게 할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할 수 있는 건 다른 한 편에서 조금씩 더디게 자라고 있는 사랑으로 포용할 수밖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서로를 향한 배려와 희생은 그 사랑을 자라게 하는 거름이요 단비가 된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부단히 사랑을 키워야 결혼은 비로소 해피엔딩이 된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해피엔딩을 위한 '정답'은 없다. 확실한 오답은 존재할 뿐. 지극히 현실적인 오답노트를 보고 싶은 이에게, 이 '결혼 이야기'를 추천한다. 영화 속 찰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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