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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Mar 02. 2020

위기 없는 기회가 과연 가능할까  

안티프래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위기'라는 새로운 '기회'

경제/경영서, 혹은 자기 계발, 아니면 철학서. 어느 카테고리에 적합한 책일까. 서점에선 경제/경영 카테고리에 책을 꽂은 듯하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서점을 운영한다면 난 '철학' 란에 이 책을 진열하겠다. 한국어판 제목으로 약간 모호하다 느낄 수 있는 '안티프래질', 원래 영문판 제목으로는 'how to live in a world we don't understand'. 나로서는 후자가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운 제목이었다.


독서모임이 내게 주는 수많은 유익 중 하나는, 나조차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통한 전혀 새로운 영감을 꼽을 수 있다. 독서모임을 통해 '안티프래질'이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받았다. 2013년에 우리나라에 출판된 책이라 지독히도 구석에 지금쯤 꼽혀 있으리라. 서점을 아무리 뻔질거리듯 드나든다한들, 또 설령 이 책을 내가 발견 한다한들, 이 책을 집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을 것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말이다.


독서모임 안에서도 난 사실 경제/경영서를 좋아하는 타입은 분명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책이 선정될 때마다 내 마음속 신명이 꺾이곤 하지만 그럼에도 기꺼운 마음 드는 건, 경제/경영서라면 그 어떤 책이건 내게 새로운 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새로운 영감이나 통찰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이 책을 소개해준 덕분에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다.


읽는 내내 감탄이 새어 나온다. 무려 201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도 전에 출간된 책이다. 철학이라면 그것이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고, 경영이론이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다른 이론이 나오기에 충분할 시간이건만 저자가 말하는 철학은 전혀 올드하지 않다. 때가 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영롱하다 느꼈다. 이 글은 결코 서평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요 근래 제대로 된 서평을 쓴 적도 없지만, 이 글은 애당초 서평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맹목적 추천사, 몹시도 주관적이고도 편협한 책 추천이라고 미리 못을 박아둔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안티프래질이라는 단어부터 (단지 이 정도의 정의를 전달하는 게 이 번 책 소개 글의 전부이겠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반대말로 '강건함', '단단함'을 꼽지만 이는 정확히 부합하는 단어가 없음으로 인한 대안일 뿐, 정확히 '프래질'에 반대되는 단어는 아니라고 말이다.


보통 택배 상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서지기 쉬움'이라고 적혀 있는 '프래질'의 의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동사를 서술해본다면 '부주의하게 취급하세요'가 아닐까. 그 내용물은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질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손상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안티프래질'의 의미라고 규정한다.

궁극적으로, 이 안티프래질이라는 (저자가 규정한) '철학적 도구'를 통해 저자는 우리 사회, 국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우리가 구비할 수 있는 여러 무기들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지와 같은, '어떻게 대비하라'는 아주 디테일한 무기는 아닐지라도, 불확실성 가득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무기를 건네준다. '통찰'과 '시야', 이를 통한 나만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안티프래질'이라는 도구로 세상을 보기로 작정할 때, 지금껏 우리가 알던 관점이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게 목표인, 그래서 미래에 일어날 위험과 사건에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겐 그러할 것이다. 애당초 이 안티프래질이라는 관점에선 미래의 불확실성부터가 우리가 바꿀 수 없거나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고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측 불가능성을 우리가 온몸으로 인정할 때 우리에겐 비로소 다른 선택의 문이 열릴 수 있다. 과거와 현재에 나에게 닥친 그 모든 위기와 실패가 이 안티프래질적 측면에선 결과적으로 모두 훌륭한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좌절을 겪어보지 않고 성장만을 거듭해온 기업은 결국 취약해진다. 그리고 기업의 약점은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쌓이기만 한다. 따라서 위기를 뒤로 미루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 안티프래질>


마치 근육처럼, 그러니까 강한 강도의 운동과 영양, 그리고 휴식이 주어질 때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장하는 우리 몸의 근육처럼 우리는 성장을 위한 자양분을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그래야 훗날 들이닥칠 더 큰 위험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늘 안정과 균형을 추구하는 우리네 회사원들에게 이 책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나 역시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가변성보다는 불변성의 가치를 지향했다. 그것이 내 삶에 더 만족과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불확실성을 예측함으로써 확실성에 다가간다는 가치가, 그리고 그 믿음이 어디까지 가능할는지, 알량한 마음의 위안보다 중요한 건 사실 불확실성을 규정하는 나의 태도가 아닐까. 요는, 미리 대비함으로써 뭐든지 피할 수 있다는 믿음과 무엇이 오더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투쟁심 사이의 선택. 책을 통해 간단히 도식해 본 내 앞의 선택지는 바로 이 두 가지 길로 수렴했다. 아래와 같은 대표적인 예시를 통해 저자는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런던의 은행원인 존과 택시 운전기사인 조지, 바로 이 두 사람의 비유를 책에선 언급하고 있다. 존의 수입은 완벽하게 예상 가능하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잘 관리하며 그동안 나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왔다고 얘기할 수 있다. 반면 조지의 경우 늘 소득의 변화가 심하다. 벌이가 좋을 땐 수백 파운드를 벌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수익은커녕 택시 운행에 따른 비용도 충당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평균적인 수입으로 보면 이 둘의 수입은 비슷하다.


존의 경우 스스로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조지의 경우 존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아쉬워하고 하지만 이 '안티프래질' 이론에 입각해서 보면 존과 조지 중에 더 유용한 것을 가지고 있는 쪽은 존이 아닌 조지라고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인 측면에서 조지는 하루하루 늘 들쑥날쑥한 수입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반면 존은 안정적이라는 타이틀 아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본인만의 무기를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800페이지 남짓한 책이기에 집어 든 책을 읽어야 할지, 그 고민의 크기가 다른 책들보다 필시 크리라고 본다. 다만, 나의 경우엔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2013년에 출판된 책이라도 나에겐 무척이나 새로운 이야기였음과 동시에 앞으로 삶을 대하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이 책을 알게 된 게, 작년 나의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커다란 즐거움 같은 책이기를 바란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위기와 어려움에 도취되어 자만하거나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면, 이 책이 분명 그 결심을 뒷받침해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또한 지금까지 꽤나 실패하고 넘어져가며 남들보다 더디게 가고 있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더 많이 넘어졌어야 했노라며 앞으로의 삶에 좌절 대신 기대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책을 집어 들고 저자와 직접 대화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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