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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Feb 21. 2020

소설가를 꿈꾸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

소설가에게 필요한 '어떤 것'

소설가를 생각하면 마치 다른 세계를 사는 듯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남들과 다른 리듬, 다른 속도의 삶을 사는 사람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등산을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소설가들은 애써 정상까지 가보고 체험해 본 뒤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이라고 했다. 너무 영특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끈기 있게 무언가 느린 속도로 해내는 사람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재능과는 조금 다른 어떤 것. 소설가는 '그것'이 있는 사람들이라 했다.


굳이 소설가로서 하루키가 경험한 바에 대해 얘길 한 건, 비슷한 시기에 읽은 덕분이기도 했지만 소설가로서의 삶을 풀어내는 그들만의 방식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다르지만 하나로 수렴한다. 같은 맥락에 있지만  서로 또 한없이 다르다. 분명한 건, 그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누가 뭐라건 이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떠든다. 누가 읽건 어쩌건, 의식하건 말건.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중략-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쓰는 게 소설가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바깥쪽을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 예컨대 평화, 정치, 슬픔, 절망 따위의 단어들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있다." - 소설가의 일 中


무척이나 어렸던 예전,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 있었다. 가진 것 없고, 지킬 것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주머니 속에서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사람들, 호기심 많던 나는 그 이야기가, 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동경했고, 그들과 같은 이야기꾼이길 소망했다. 청년의 시절 잠시 밟았던 브레이크에는 그런 연유가 있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가의 일'을 읽으며 예전 그때가 떠올랐다. 암울했지만 동시에 즐거웠던 그 시절,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세월,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아니 실은 그러고 싶지 않은. 그래서 이 책이 내겐 너무나도 즐거운 대화이기도 했다. 김연수라는 작가님과, 그리고 나 자신과. 세월 이렇게 흘렀음에도 여전히 나는 책이 좋다. 활자가 좋고 쓰는 것이, 그 끄적임이 즐겁다. 신명 난다. 친절하게 소설가로서의 작법을 담아낸 이 책을 통해 그 단순한 사실을 더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평범하지 않은 소설가의 평범한 일상과 철학을 담고 있다. 대작가님이라고 해서 결코 어렵게, 혹은 지나치게 어깨 힘 들어간 글이 아니다. 홈런을 치려거든 힘을 주지 말고 되려 힘을 빼야 한다는 알쏭달쏭한 말이, 이 책을 보면 이해가 된다. 평범한 스윙이지만 부드러운 궤적을 통해 공은 담장을 쉽게 넘어간다. 평범한 글이지만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담백한 자기 고백은 읽는 이의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쉬이 날아가 꽂힌다. 목적이 홈런이 아니었듯, 애당초 목적 자체가 공감이 아닌 담담한 자기 고백인 덕분이 아닐까.


소설가로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날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혹은 잘 정제하고 정성스레 갈무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래서 가늠해보게 된다. 그가 이 책 '소설가의 일'을 쓰며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을까. 소설가로 작지 않은 한 획을 긋고 있는 그가 풀어낸 스스로의 이야기, 그 마음을 감히 가늠해본다면 다름 아닌 '즐거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난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신명을 읽은 듯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설가는 텍스트의 디자이너다. 방금 쓴 문장이 소설의 문장이라고 한다면 '텍스트'의 다음에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이어지게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소설가다." - 소설가의 일 中

소설가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소설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친절하고 애정 어린 주석과 함께 말이다. 무어라 표현하면 안성맞춤일까. 내 머릿속에 있는 바를 사진으로 고스란히 꺼내어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글로 치환해본다면 다름 아닌 이 책이 난 떠오를 것 같다. 


소설가를 지망하건, 회사원이건, 학생이건, 활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우리 인생에서 이 책은 분명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영상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하물며 영상을 위해 필요한 '크리에이티브'에는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난 믿는다. 영상 다음은 뭘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분명한 건 영상 그 이후에 다가올 세상, 혹은 그 다음다음 세상에도 활자는, 그리고 글은, 그리고 책은 계속 영원하리라는 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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