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복도

4기 암환자의 회사 복직 일기

by 이유

'지이이잉- 지이이잉-'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며 복도로 향했다. 사무실 안에서도 받을 수 있는 전화였지만, 조용한 공간이라 기침 소리마저 크게 울렸다. 대화가 실시간으로 다 들릴까 봐 부담스러웠다.

복도를 걸었다. 끝에서 끝으로. 끝 지점에 닿으면 유턴해서 반대편으로. 몇 바퀴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다리가 아파질 즈음에야 통화를 끊을 기미가 보였다.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네~ 들어가세요~"

하이톤으로 전화를 마무리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복도 한가운데 멈춰 섰다.

통화 시간 25분 12초.

통화에 집중 하느라 바닥만 보고 걸었다. 통화를 끊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한쪽 벽을 가득 메운 통유리창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너머로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었고, 빼곡한 회색 빌딩들 사이로 희미한 초록빛 산이 보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문득 다른 복도가 떠올랐다.


병원 복도였다.

암 수술 직후, 나는 매일 병원 복도를 100바퀴씩 걸어야 했다. 장폐색이 와서 막히고 꼬인 장들을 펴주려면 계속 움직여야 했다.

복대, 배액관이 연결된 피주머니, 팔에 꽂힌 영양 수액... 온몸에 의료기구를 주렁주렁 달고 수액 걸이대를 끌고 다녔다. 살아있는 나의 배를 20cm나 째고 갈라 위와 비장을 떼어냈으니, 엉망이 된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걷기 운동이 절실했다.

그리고 콧줄. 내 병원 패션의 마지막 아이템이었다. 검지손가락 굵기의 투명한 관이 코에서 시작해 식도를 거쳐 소장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L-tube라는 비위관으로, 막힌 장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것들을 위로 빼내는 장치였다.

코 피어싱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려나 싶었다. 물론 전혀 멋있지 않았다.

그렇게 각종 의료 악세사리로 온 몸을 치장(?)하고 나는 하얀 복도를 쉼 없이 걸었다. 끝에서 끝으로, 또 끝에서 끝으로. 10바퀴, 20바퀴, 30바퀴... 매일 100바퀴를 채웠다.

병원 복도는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그 복도는 지금처럼 고요하지 않았다. 수액과 약을 들고 뛰어다니는 간호사들, 환자를 돌보는 간호조무사들, 전화를 받으며 분주한 전공의들로 시끌벅적했다. 외과 병동이라 복대와 깁스를 두른 환자들이 곳곳에서 신음을 토해냈다.

밤 10시 소등 후에는 암흑 속에서 끙끙대는 소리만 들렸다.

그 속에서 나는 폴대를 끌며 힘없이 걸어 다녔다. 몇 미터 안 되는 외과 병동 복도를 하루 수십 바퀴씩, 하염없이.


지금은 회사 복도다.

폴대도, 수액도, 배액관도, 콧줄도 없다. 햇빛이 스며드는 고요한 회색 복도에서 고층 빌딩 사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25분 통화가 스트레스였다지만, 온몸에 의료기구를 달고 걷던 시절에 비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두 복도는 닮았다. 길고 일직선인 통로, 끝에서 끝으로 걸을 수 있는 평지.

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하염없이 걸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에 휩싸인 채로. '이다음이 뭘까, 그다음은 있기나 한 걸까'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만 가득했다. 복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목적이 있다. 전화는 곧 끝날 것이고, 돌아갈 곳이 있다. 해야 할 일이 기다린다. 복도의 끝이 보인다. 일직선의 복도에서 빠져 나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병실 침대가 아닌, 네모난 내 책상으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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