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상할 비위가 없어

암 4기 환자의 복직 일기 9

by 이유

어원을 발견하다


책을 읽다가 '비위 상하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소화액을 만드는 장과 소화를 시키는 장이 거부감을 느끼면 비위가 상한다고 한다. 보통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느껴 속이 메스꺼워지거나 토할 것 같은 생리적인 현상을 의미하고, 혹은 마음이 거슬리고 아니꼽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비위가 없으니까 비위 상한다는 말을 하면 안 되나?


3년 전,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위를 전절제했다. 전이가 된 비장도 함께 떠나보냈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는 더 이상 비위(脾胃)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위는 여전히 상한다. 물리적인 장기는 사라졌지만, 마음속 비위는 건재한 모양이다.


일상 속 비위가 상하는 순간들


집 앞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릴 때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 어지럽게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봉투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비위 상하는 냄새다. 뜨거운 여름 날씨가 쓰레기 냄새를 더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이상하게 비위가 없는데도 토 나올 것 같아 애꿎은 소화액을 뱉어내기도 한다. 비위가 없어도 여전히 나는 비위가 상한다.


회사로 돌아가다


암 치료를 마치고 회사에 복직한 지 벌써 3개월이 흘렀다. 동료들은 처음엔 조심스러워했다. "괜찮으세요?",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루에 몇 번씩 들었다.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때로는 그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가장 어색했다. 동료들이 매콤한 찌개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화 잘 되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화장실을 자주 가거나 배를 움켜쥐고 있으면 "어디 아프세요?"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따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원래 이렇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 안에서는 아무리 비위가 상해도 티를 낼 수 없다. 엑셀 시트 안의 숫자들과 씨름하거나, 나와 관련 없는 회의에 2시간 붙잡혀 있을 때, 분위기를 맞추느라 억지웃음을 지을 때, 나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비위 상할 틈 없이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 한 명일 뿐이다. 비위 상한 것을 티 내면 유별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마음의 비위


아, 비위는 몸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마음에도 비위가 있었다. 혐오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표현하고, 역겨움을 감지하는 마음의 기관. 그것은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존자의 역설


비위가 없어도 비위는 상한다. 위가 없어도 배는 고프다. 죽을 뻔했어도 삶은 계속된다.


이 모든 모순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도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들, 제거되었어도 작동하는 본능들. 그것들이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암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매일 작은 역설들과 마주하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밥을 먹는 것, 출근하는 것,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당연한 것처럼 하루를 산다.


오늘도 비위가 상했다. 물리적인 비위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일도 출근할 것이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업무에 집중하고, 점심에는 소화 잘 되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존자의 일상이다. 비위 상할 일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비위 상할 비위가 없는 채로,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들의 연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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