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의 밤이 다하기 전에

홍야등 아래, 우리가 머물던 밤

by 리우화
1. 충칭, 홍등 아래 괴식을 맛보다


중국 쓰촨성 충칭(重庆)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옆 도시 청두(成都)와도 느낌이 달랐다. '도시'란 가명을 쓰는 시골처럼 낙후와 현대가 자연스레 되섞였다.



지하오와 나는 점심 차 닭날개구이(辣子鸡)를 해치우고 길목을 쏘다녔다. 오후 햇살 아래 마작 치는 여성들의 웃음소리, 코를 근질이는 진득한 마라향. 나는 예로부터 사람 사는 풍경을 좋아했는데, 충칭의 소탈한 얼굴은 중국 서민들을 닮아있었다.



"옛날에 양쯔강에는 용이 살았대. 강가 사람들은 용에게 제물을 바치며 풍년과 안전을 기원했다고 해. 그 용은 여의주를 강 깊숙이 숨겼는데, 그 보물이 지금껏 양쯔강의 물길을 조정했다고 하더라고. 할머니한테 들었어."


지하오가 양쯔강 상부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쯔강은 삼국지 시대의 중요한 전략 지대였다는 명성과 반대로 새벽하늘처럼 고요하고 잔잔했다. 한때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던 이곳은 세월이 흐르며 다리가 놓이고 차가 오가는 등 새 역사가 쌓이고 있다.


우린 밀크티 한 잔씩 사서, 양쯔강에서 차오톈먼(朝天门)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내려 갔다. 하늘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조금씩 어두워졌다. 대만 지우펀을 연상시키는 풍등들이 하나 둘 켜지며 길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충칭은 불어오는 바람마다 차 향이 가득했다. 홍차, 호지차, 녹차, 이름 모를 꽃 차... 차 향에 취해 기분도 발그레해졌다.






관광객들로 복작이는 충칭 번화가에 다다랐다. 개인적으로 시티투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숍, 유명 브랜드, 가전 매장. 그나마 흥미로운 곳은 특산품 가게인데, 쓰촨성답게 오리머리나 토끼 몸통, 마라 향신료를 활용한 간식이 많다. 다만 그 조차 몇 군데 돌아보면 이모이양(一摸一样)이다.


그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불길한 푸드코너 한 곳. 바로 '곤충꼬치'. 중국의 곤충꼬치는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전갈, 귀뚜라미, 누에 번데기, 거미, 메뚜기 등 다리 달린 곤충은 죄다 꼬챙이에 꽂혀 노르스름 구워진다. 물론 이 음식은 관광객이나 괴식 취향의 일부 현지인이 맛볼 뿐, 중국인들이 일상처럼 먹는 음식은 아니다.


"나도 번데기만 몇 번 먹어봤고, 다른 곤충은 먹어본 적 없어."

"그럼 오늘 나랑 같이 시도해 보자."

"탈 나도 괜찮겠어?"


그의 뜨악해진 표정을 뒤로한 채 뱀 튀김을 주문했다. 과거 베이징에서 투명한 뱀 껍질 튀김은 본 적 있었지만, 생 뱀은 처음 본다. 어렸을 때 만화책에서 뱀 고기가 닭고기처럼 살살 녹는다는 대사를 읽고 어른되면 꼭 맛보리라 다짐했던 식재료다.


동글동글 말린 얼룩무늬 뱀 튀김. 크기는 애기 손바닥만 하고, 매운 향신료가 솔솔 뿌려져 있다. 한 입 크게 물자 바삭, 몸통 일부가 혀 끝에서 파스스 부서졌다. 어떤 식감이 나면, 자동차 타이어를 기름에 듬뿍 절여 200도에 녹진히 튀긴 맛.


"맛이 끔찍한 것 같네. 나는 안 먹을래."


죽어도 안 먹겠다는 지하오 입에 남은 뱀 튀김을 밀어 넣다, 결국 엄지 손가락만 한 굼벵이 꼬치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싸움 종결. 여담으로 중국에 가면 굼벵이는 꼭 드셔보시라. 바삭하고 고소한 게 쌀알만 한 번데기와 급이 안 된다.



몇 걸음 띄자마자 새로운 재료가 눈에 띈다. 충칭에서 토끼머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먹는 동물 머리, 바로 오리다. 토끼 머리 버금가게 본래 얼굴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구워 나온다. 지하오는 나를 위해 오리머리 두 덩이를 사 왔다.


저번처럼 그가 내 눈을 가려줘서 먹이는 게 아닌 내가 직접 뜯어먹었다. 장조림처럼 달짝지근한 소스에 조려 나오고, 고기결은 퍽퍽한 수육 같다. 이제 다른 머리는 어떤 맛일까, 섬뜩한 궁금증마저 든다.


"우화, 처음에 난 너를 좀 걱정했어. 비위가 약해서 금방 한국 간다고 할까 봐. 다른 외국인들처럼 이런 걸 먹는 우리나라를 싫어하게 될 까봐. 근데 넌 신기하게도 뭐든 잘 먹고 받아들였지."


지하오의 말에 나는 배시시 웃었다. 나는 비위가 약하다. 어렸을 때 병아리가 떠올라 오랫동안 계란도 먹지 못했으니까. 비위가 좋은 게 아니라, 중국을 여행하면서 마음도 생각도 강해진 덕이다. 뭐든 잘 이겨내고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했을 뿐이다.




2. 홍야등, 홍콩 노래, 그리고 너


요란하던 충칭에도 밤이 찾아왔다. 충칭의 다른 별명은 '꺼지지 않는 도시'다. 낮엔 황량한 매력을 풍겼다면, 밤엔 불꽃놀이처럼 화려하다. 특히 달이 떠오를 때쯤 사람들의 발길은 한 꼭짓점으로 모여든다. 바로, 홍야등(洪崖洞)이다.



절벽 위아래로 층층이 쌓인 건물, 눈부시게 밤을 밝히는 수천 개의 홍등.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유령 객식구들이 골목을 배회할 것만 같은 몽환적인 풍경이다. 전통 기와지붕, 목조 건축으로 꾸며진 건물들 사이로 충칭 사람들의 낭만이 물들어 있다.


우린 다리를 건너 홍야등의 물어름이 진 가릉강(嘉陵江) 하변으로 내려왔다. 천공의 섬 같은 금빛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꿈과 생이 엇갈릴 정도로 황홀하다. 홍야등과 가릉강을 앞에 두고 충칭 시민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고, 마주 보고 웃고, 내달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풍경과 화려한 홍야등이 친숙하게 어우러진다.


우리는 근처 바위에 자리를 틀고 앉아 유선 이어폰을 나눠 끼고 홍콩 노래를 들었다. 그는 90년대 초반의 중화권 노래들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陳奕迅 의 <Lonely Christmas> 같은. 귀로 흘러오는 멜로디를 들으며 발끝을 까닥였다.



우린 각자 좋았던 여행지와, 맛있던 음식, 언제 서로의 나라에 놀러 갈 건지 등을 대화했다. 디자이너인 지하오는 여행을 마치면 해외 무역으로 업을 바꾸겠다고 했다. "좀 더 전망 있고 연봉 높은 일을 해 보고 싶어. 천천히 배우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에 씁쓸히 웃었다. 사실 나는, 겁났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 자리가 있을까. 무엇보다 지하오처럼 나를 따스히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차가운 서울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또다시 외로운 시간을 홀로 견뎌낼 수 있을까.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자꾸 눈물이 나와 고개를 숙여 훌쩍였다. 이별이 싫었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질릴 만큼 두려웠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졌다고, 감히 착각하며 살아왔던 나였다. 지하오는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3. 마지막 식사, 허궈


밤 11시를 넘긴 시간에도 충칭의 밤거리는 북적였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져 만담을 나누는 아저씨들을 지나, 담배를 태우는 단발머리 언니를 지나, 홍야등이 조각된 기념품을 파는 좌판을 지나. 새벽 넘이 허궈 식당에 들렀다. 중국 90년대 콘셉트의 허름한 가게다.


"우리들의 마지막 식사."

"마지막 식사."

"뭐 넣어서 먹을까? 시간이 지나도 다신 잊지 못할 재료. 나는..."

"돼지 뇌." "돼지 뇌."



우린 매번 이렇게 이상한 구석에서 통했다. 남들이 데이트 때 즐겨 먹는다는 파스타나 돈가스 같은 것도 없이. 개구리 뒷다리부터 오리 갈퀴, 토끼 머리, 뱀 튀김을 나눠 먹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 날까지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어서, 우리의 만남이 더 좋았는 지도 모르겠다.


보글보글 끓여지는 홍탕 옆으로 선홍빛의 돼지 뇌가 서빙됐다. 성인 손바닥만 하고 생각보다 더 몰랑하다. 식당 주인은 뇌를 썰지도 않고 탕에 퐁당 담근다. 몇 분 지나자 갈색빛으로 기묘하게 익혀진 뇌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먼저 숟가락으로 푹 퍼서 입에 넣는다. 커스터드푸딩처럼 부드럽게 부서지는 식감. 그 뒤로 생전 처음 겪는 저릿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인간으로 먹어선 안 될 것 같은 금기의 음식. 나를 따라 한 숟갈 크게 입에 넣었던 지하오와 눈이 마주친다. 순간 찡그린 표정으로 말없이 맛을 공유하다 부푼 빵처럼 와하하 터진다.


우린 자정을 넘어서까지 보글보글 마라향을 풍기는 허궈를 앞에 두고 일본 영화 <A Scene at the Sea>를 봤다. 청각장애인 청소부 시게루가 바다에서 주운 낡은 보드로 서핑을 시작하고, 그의 연인이자 역시 청각장애인인 다카코가 그를 지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담긴 영화.



우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말이 없어도 충분한 사이. 지하오를 처음 만났던 호도협 중턱이 떠올랐다. 함께 바라봤던 밤하늘, 눈부시게 뛰어다녔던 구채구. 마주 보며 웃었던 천극과 함께 불렀던 청두 노래. 모든 장면이 오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행은 버스와 같아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관광지도, 사람도 그렇다. 오르는 승객이 있다면 내리는 승객도 있다. 버스는 아쉬워하지 않고 종착점을 향해 내달린다. 애틋함도 미련도 뒤로 한 채.


새벽 3시를 넘어선 시각, 우린 허궈집 앞에서 마주 봤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맑은 눈과 오뚝한 코를. 양 옆으로 긴 입술과 까무잡잡한 목덜미를. 짧게 자른 앞머리와 허름한 회색 옷소매를.


14일, 그 짧은 시간 동안 스며들듯 사랑했던 이 먼 중국 땅의 이방인. 내 여행의 조연처럼 등장했다가 남자 주인공이 돼 버린 그를, 이젠 보내줘야 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영화도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별이 익숙한 사람처럼. 가릉강에서 한참 울었더니 이젠 눈물마저 덤덤해졌다.


"잘 가. 지하오. 고마웠어."

"네가 고맙다고 할 때가 싫어. 우리 사이에 고맙단 말은 하지 마."

"그래도 고마운 걸. 네가 내게 해 주었던 모든 게 다. 너 같은 사람은 다시 또 만날 수 없을 거니까."

"다시, 너 혼자 시작하는 여행이네. 나 없이도 잘 다닐 수 있지?"


지하오는 웃으며 나를 꼭 껴안았다.


"我们一定会好起来的"

우리 둘 다 분명히 잘 될 거야.


분명, 그럴 거야.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비가 막 그쳐 습기 어린 밤바람이 양 볼에 닿았다.

가릉강을 스치며 날아온 바람결이 찼다.


고마워, 잘 가.

나의 영원한 시절인연.



리우화의 뒷 이야기


구채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구채구를 둘러본 늦은 오후, 청두로 돌아가는 기차가 끊긴 걸 알게 됐다. 방법은 하나. 구채구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 잔 뒤 다음날 새벽 일찍 출발하는 기차를 타는 방법뿐. 운 좋게 숙소를 찾았지만 1박 가격이 우리 수준에 비쌌다. 결국 별 수 없이 침대 2개가 있는 방 하나를 예약했다.


와글와글 떠들던 우리 모두 말 수가 확 줄었다. 소개팅에 나온 사이처럼 매 순간 데면데면했다. 방엔 드라이기도 없어 우린 축축한 머리로 소파 끄트머리에 나란히 앉았다. 공기엔 샴푸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았다. 누가 말 한마디를 하면 물속에서 말하는 듯 웅얼웅얼했다. 묘한 긴장감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TV를 틀었다. 한창 한국 대통령 탄핵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린 촉촉하던 머리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뉴스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곤 자정이 될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침대에 후다닥 올라갔다.


"잘 자."

어둠을 뚫고 그가 비로소 한 마디 건넸다.

"잘 자."

나도 감탄사처럼 한 마디 던지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어 올렸다.


평화롭게 흐른 다음날 새벽, 내가 먼저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충칭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에게 카메라를 챙기라고 말하려던 순간, 등 돌린 너머로 그의 벌건 양 귀가 보였다. 꽤 긴 시간이 흘렀을 무렵, 그에게 그날 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한숨도 못 잤지."


우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계획대로 지하오는 자신의 고향인 광저우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 장가계로 떠났다. 그 후엔 후난성을 돌아본 뒤, 선전을 거쳐 홍콩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삶이 그렇듯 결말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문장들로 늘 다시 쓰인다. 그래서 함부로 만남을 기대하지도, 이별을 슬퍼하지도 않아야 한다.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거라 믿었던, 우리가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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