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몽환적인 겨울 동화 마을, 설향(雪乡)

중국 동북지방 여행 - 설향, 야부리(1)

by 리우화


1월, 새하얀 눈이 아침 창가에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유스호스텔에 사는 흑색 고양이는 새초롬하게 앉아 떨어지는 눈을 구경합니다. 그거 아시나요? 고양이에겐 눈 나리는 게 마치 밝은 점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데요. 얼마나 화사할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 저는 하얼빈(哈尔滨)에서 첫눈을 맞았습니다. 여긴 영하 25도라서 한낮에도 속눈썹에 서리가 집니다. 추위에 약한 저는 히트텍부터 목니트, 후드티, 패딩까지 사중으로 껴 입었습니다. 전투 군인처럼 뚱뚱한 패딩 모자까지 야무지게 써도 살얼음 같은 바람은 양볼을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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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홍좐제 아침시장(红专街早市)에서 따끈한 양고기 수프를 먹고, 추운 날씨에 꽝꽝 언 딸기 탕후루 한 꼬치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길가 건물에 기대어 앉아 얼음 딸기를 한 입씩 깨 먹으며 행인들의 얼굴을 구경합니다. 빨간 스카프를 맨 아이, 진한 속눈썹을 붙인 젊은 여자, 요우티아오(油条)를 먹으며 발길을 재촉하는 직장인들. 그들의 사회에 낯설게 스며든 이방인은 마지막 얼음 딸기를 와삭 깨어 먹고 걸음을 뗍니다.


터덩터덩- 아침 고속열차를 타고 약 1시간을 달려, 조금 더 추운 마을 야부리(亚布力)에 도착했습니다. 새하얀 설산에 도착하자 붉은말들이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그들이 끄는 마차에 조심스레 올라타자 털모자를 쓴 마부는 ‘워’하며 얇은 채찍을 휘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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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은 푸릉 대며 천천히 육중한 몸을 일으키고, 승차감은 촌스런 말 마차가 눈꽃 핀 나무 사이를 지나갑니다. 저는 겨울 설화 속의 주인공처럼 고개를 크게 젖히고 말갛고 청아한 겨울 하늘을 만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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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패딩 자락이 휘날릴 정도로 빠른 스노모빌입니다. 엄습한 두려움에 탑승을 망설이자, 운전기사가 두 손을 자신의 배 앞으로 꼭 끌어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스노모빌은 설산을 오르고, 저 멀리 낙타무리가 옹기종기 지나가고, 눈꽃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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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흑룡강성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 다투딩쯔산(大秃顶子山)에 올랐습니다. 매서운 싸락눈이 내렸지만 웅장한 설산의 장관은 덮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윈난 성 리장에서 다녀왔던 옥룡설산이 설화에 나오던 위압감이었다면, 야부리의 설산은 잔잔하고 새하얀 바다 같습니다. 이곳은 한 겨울 내 쌓인 눈이 종아리까지 푹푹 파일 정도로 두텁습니다. “일본엔 삿포로, 중국엔 야부리가” 제가 언젠가 이 말을 유행시킬 날이 오련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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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가 장관을 이룬 음악장랑(冰雪画廊)에선 70대 할아버지도 20대 이방인도 모두 일곱 살 어린아이가 됩니다. 대형 튜브를 줄줄이 기차처럼 연결한 ‘설지장룡(雪地长龙)’과 눈 위에서 타는 회전목마인 ‘설지잔전(雪地转转)’을 즐기며 꺅 시원한 비명도 질러봅니다. 바닥이 얼마나 꽁꽁 얼었던 지 대여섯 번은 대자로 넘어져서 얼굴도 벌게집니다. 맑은 눈의 순록들과 썰매개들이 가득한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동양의 작은 시베리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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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내내 겨울을 만끽하고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 설향(雪乡)에 도착합니다. 말 그대로 ‘눈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눈에 닿는 모든 곳이 새하얗습니다. 가게 입구마다 매달린 붉은 풍등만이 따스하게 제 빛을 내며 밤을 밝힙니다. 이곳의 눈은 얼기설기 내려 지붕 위에 둥그런 버섯처럼 쌓입니다. 마치 신들이 디저트를 먹다가 흘린 생크림이 포근하게 쌓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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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마을을 돌아다닙니다. 노점상마다 파는 과일 위에 흰 눈이 쌓였습니다. 저기 보이는 검은 알은 차갑게 언 배입니다. 살짝은 시지만 조각씩 잘라 물에 끓이면 단 맛이 납니다. 제 팔뚝만 한 양꼬치와 샛노란 옥수수, 동북지방 특색 음식인 홍창(红场)도 눈에 띕니다. 하나씩 먹다 보면 그새 북을 치며 흥겹게 춤을 추는 설향 주민들이 곁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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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따뜻한 음식이 끌려 매콤한 마라면과 양꼬치를 먹다가, 밖에서 나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끌려 광장으로 나섭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나는 노래에 몸을 맡기는 광장 댄스가 한바탕 무르익고 있습니다. 댄스 마지막 곡이 무려 지드래곤(G-dragon) 노래입니다. "이거 우리나라 노래야!" 맘껏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어른답게 눌러 참습니다. 낯선 중국 댄스곡에 몸만 감흥 없이 흔들던 저는 비로소 함박웃음 지으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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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일시에 무대 조명이 툭 꺼집니다. 이윽고 불꽃놀이와 드론쇼가 하늘을 눈부시게 수놓습니다. "新年快乐(새해 복 많이 받아!)"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이방인은 남몰래 올해 소원도 빌어봅니다. 작은 동화 마을에서 열린 소담한 밤의 축제.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듯, 여행 내내 얼었던 외로움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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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두꺼운 털모자를 눌러쓰고 손을 호호 불며 숙소를 나섭니다. 숙소 여주인이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주전자를 손에 쥐어주고 제 핸드폰의 슬로 모션을 켭니다. 긴장한 손을 머뭇이다 등 뒤로 동그랗게 물을 뿌립니다. 물방울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새하얗고 둥그런 무지개를 만들어냅니다. 오로지 이 겨울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차가운 무지개입니다.


여주인이 만들어준 훈툰(馄饨)을 먹고 캐리어를 챙겨 들고나갈 채비를 합니다. 저 멀리 역으로 향하는 택시 기사가 손을 흔듭니다. 길고 길었던 겨울 여행이 끝났습니다. 매일 매 순간 몽환적이었고 동화 같았던, 내가 떠나 온 여행 중 가장 추웠고 따뜻했던 중국 동북 여행.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의 눈은 점점 옅어졌지만, 저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하얀 시간은, 평범한 날들 사이에서 오래 반짝일 테니까요.




[1] 여행지 기본 정보 : 중국의 3대 동북지방(동북 3성, 东北三省)은 크게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으로 나뉩니다. 요녕성(辽宁省)은 선양, 다롄. 지린성(吉林省)은 창춘, 연변, 창바이산(백두산). 흑룡강성(黑龙江省)은 하얼빈, 쉐샹으로 나뉩니다.


이중 흑룡강성 하얼빈의 경우 영하 20~30도까지 하락하는 극추위를 경험할 수 있는 겨울 대표 중국 여행지입니다. 러시아 건축 양식이 묻어있어 독특한 풍경을 자랑합니다. 보통 여행 코스는 연변과 백두산, 하얼빈을 엮어서 갑니다. 만일 중국 시골이나 오지 여행을 좋아하시면 하얼빈에서 모허, 야부리, 설향 등을 여행하기도 합니다.


[2] 야부리&설향 : 오늘 소개해드린 야부리-설향은 한국인 발길이 아직은 적은 '숨겨진 여행지'입니다. 먼저 야부리는 중국 최대 규모의 스키 리조트 단지가 위치한 지역으로, 동북 지역 대표 겨울 스포츠 관광지입니다. 스키 외에도 설산 능선을 오고 내리는 스노 모빌, 말 마차, 설산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는 다투딩쯔산 등 여러 겨울 체험 콘텐츠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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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향은 중국 내에서도 적설량이 매우 많은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습설과 강풍의 영향으로 지붕 위에 버섯 모양처럼 쌓이는 눈 구조(蘑菇雪)가 형성되어 독특한 경관을 만듭니다. 중국 겨울 관광지 중 대표적인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3] 교통편&날씨 : 하얼빈역에서 야부리까지는 셔틀버스 or고속열차로 이동 가능합니다. (1시간) 다만 설향은 대중교통 접근이 어려워 야부리역에서 차량 이동 또는 투어 이용이 일반적입니다. 겨울철 폭설로 도로 상황 변동 가능성 있기에 사전 차량 예약 권장됩니다. 날씨는 낮에도 영하 10~20도까지 하락하며, 밤에는 최고 30도 이하까지 하락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방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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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부리와 설향은 각각 겨울 스포츠 중심지와 설경 관광지라는 성격을 갖고 있으며, 함께 방문할 경우 활동과 풍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하얼빈 대표 겨울 코스입니다. 중국 동북 지역 특유의 혹한 환경과 설경을 체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극 추천드립니다 : )


하얼빈부터 야부리-쉐샹까지 이어지는 여행이 궁금하시나요? 여행 코스, 숙소, 맛집, 체크 리스트, 예약 링크까지 총 정리! 직접 제작한 노션 링크 공유드릴게요. 무료고 암호 없으니 누구나 편하게 여행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노션 링크 >> https://spectacled-chartreuse-ee6.notion.site/Travel-to-China-2de91c2fd0768020863ee49f103aec29?source=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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