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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Sep 08. 2021

‘바다의 신비’ 울릉도로

여행이 나에게 선물한 가치는


[1] 육지에서 바다로



“그러니까 면허도 없고 자전거도 못 타는 네가 혼자?”

그러니까. 내가 왜 혼자 간다고 했을까.


엄마의 놀란 목소리에 나도 흠칫했다. 몸을 실을 수 있는 교통수단은 버스 밖에 없는 내가 혼자, 그 것도 섬으로 여행을 간다라. 심지어 25살 인생 처음으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당일치기야 광주에서 자취할 때 종종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몇 박까지 자고 왔던 적은 없었다.


엄마는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입을 달싹였지만 -안돼, 같았던- 평소 내 상태를 알고 있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말라비튼 과메기처럼 축 늘어진 내가 여행을 다녀오면 좀 팔팔해지겠지, 란 기대감이었을 테다. 대신 본래 공표했던 1주일에서 4일 깎은 단 3일 만. 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 풍경과 소리, 그리고 자연의 내음을 나 홀로 만끽할 수 있다니!


기분 좋게 허락 받고 거실 쇼파에 눕자마자 저녁 8시 뉴스에서 ‘한 관광지 게스트하우스에서 폭행을 당한….’ 앵커의 긴장된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어 ‘올해 여름 첫 태풍이 이번주를 강타할 예정이오니….’ 일기예보까지. 내가 순간 엄마를 쳐다보기 무섭게, 잔뜩 일그러진 그녀의 입은 “가지마!”를 외칠 참이었다.


[2] 왜 난 번아웃에 빠져서




“혼자서? 그 것도 울릉도를 간다고?”


평소 내 길치 성향을 알고 있던 친구들은 엄마보다 걱정이 한 아름이었다. 원래 여행가는 친구한테 ‘잘 다녀와’가 정석인데 왜 ‘살아 돌아와’ 냔 말이다. 친구들 머리 속엔 이미 울릉도 파도에 널리널리 휩쓸려 가는 내 모습이 그려진 게 분명했다.


왜 울릉도였을까?


본래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내 취향 탓도 있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다.


퇴사. 따스하고 안락한 지하동굴에서 빠져 나오니, 눈 내리는 한겨울이었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리 힘겨운 직장이었을지라도, 소속감을 잃어버린 건 큰 공허함을 가져왔다. 퇴사 직 후 느꼈던 쓸쓸한 기분 좋음은 사라지고, 애틋한 쓰라림 만이 가슴에 채워졌다. 번아웃, 그 어둠은 눈 깜짝할 새에 나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내가 이렇게 무기력한 사람이었나’


침대에 누워있을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누워있는 이 좁은 방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된 것 처럼.

이윽고, 이 무기력이 나를 머리 끝까지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지금 깨어나서 어딘가로 달려가지 않는다면, 평생 이 공간에 이 세계에 갇힐 것이란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다. 국내 여행지를 찾아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있는. 지금 내가 있는 곳과 가장 멀리 떨어진 저 섬 어딘가로.


그리고 그렇게 나의 인생 첫 혼자 떠나는 여행은 ‘울릉도’로 정해진 것이다.

현실도피였을까. 나 지금 이렇게 떠나도 좋은 걸까.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서 재잘거렸다.

하지만 ‘지금 떠나야 해’ 란 마음 깊은 곳 목소리는 진실했다. 잠깐만, 잠깐만이라도 바람을 쐬러 떠나보자. 그 정도의 작은 여유를 내게 건네주자.

비록 충동적인 여행이었지만, 그 결말만큼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길 절실히 바랬다. 새로운 나를 마주할 수 있길 바랬다.


[3] 내가 본 경치들, 내가 만난 사람들



첫 날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썩 좋은 출발은 아니였지만, 울릉도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섬을 둘러 싸고 있는 맑고 청아한 바다. 든든하게 솟아난 돌산들. 마음을 간질히는 짭짤한 바다 내음….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난 자유를 찾아 떠날거야!’를 외치며 훌쩍 떠났을 때, 그의 근사한 첫 여행지가 될 만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소설을 한 장 씩 넘기는 것 같았다. 버스 시간대를 못 맞춰 허둥대거나 숙소 위치를 잘못 선정해 종일 짐 들고 다녔던 소소한(?) 사건들도 퍽 재미였다. 나 혼자 오롯히 낯선 곳에서 하루를 산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근사한 경험이었다. 스킨스쿠버도 난생 처음 체험해봤다. 깊은 바다 속 몸을 맡기며, 내 가슴 속 자리 잡은 두려움도 떠내려 보냈다.


“여기, 정말 잘 왔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울릉도에서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했던 건, 사람들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사람관계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큰 설렘을 선물해주었다. 조그만 여자애 하나 뽈뽈 다니는 게 마음이 쓰였던 지, 여행지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대풍감까지 함께 걸어 올라간 아주머니, 손녀딸 마냥 챙겨주시던 할머니들, 다음에 또 놀러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울릉도 남편을 둔 서울 언니….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마냥 외로울 거라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매순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하곤 밤바다를 수 놓은 별들을 구경하러 갔다. 아!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낭만 만을 갖고 마주한 게 얼마만인가.


울릉도의 낮은 청량했고, 밤은 고요했다.

내가 흘린 눈물은 넓은 바다에 아주 작은 물결로 떠밀려 가버린다.

내가 쏟아낸 하소연은 바닷 소리에 묻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상처 입은 내 가슴 한 켠에 하이얀 꽃이 피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난 2박 3일의 짧은 여정 동안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마지막 날, 울릉도를 떠나던 날 스노우 볼 하나를 샀다. 볼 안에는 삼선암이 올곧게 서 있었다. 마음이 지칠 땐 방 불을 끄고 이 스노우 볼을 돌려 본다. 소복소복 내린 눈 알갱이들이 노오란 불빛에 사르르 사라진다. 내 걱정도, 내 두려움도, 다 같이.


‘괜찮아, 잠깐 멈춰가도 돼’ 어쩌면 난 이 한 마디 위로를 얻고자 이번 여행을 떠난 건지도 모른다.  숨 한 번 돌린다고 멈추지 않는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지치지 말고 계속 걸어가자고.


[4]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뜨거웠던 울릉도의 밤을 뒤로 한 채 건너 온 현실은 전과 다름없이 겨울이었다. 외롭고, 공허했다.


난 여전히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다시 치열하게 자격증 시험을 치뤄야 하고, 이력서를 써 내려가고, 지겨운 면접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이상 속에서 살 순 없었다. 현실로 돌아와야 했고, 현실을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울릉도에서의 시간들은 내 가슴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추진력이 됐다. 내 눈 앞의 이상은 사라졌지만, 내 안의 이상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몇 일 뒤, 나는 프리다이버 자격증을 땄다. 삶의 도전들을 하나 하나 치뤄가며 천천히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상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현실을 살다 보면 다시금, 새 시작을 위한 준비를 마치지 않을까. 울릉도의 선선한 바닷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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