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정신이 멍했다. 주변은 어두웠다. 주사 바늘을 꽂은 팔에 찌르르함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가던 상황이 생각났다. 약하게 천장벽에 빛이 들어왔다.
“서서히 감각을 되찾으실 겁니다”
호감 가는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어디서 들렸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고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천장은 매우 낯설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고 손 끝을 움직여보았다. 약간 뻐근하면서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손 끝이지만 손 끝의 움직임은 느낄 수 있었다. 비어있던 머릿속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두통이 생겼고 나도 모르게 찡그렸다.
“두통이 심하신가요? 완화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또 어디선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아. 나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살아있구나. 수동적으로 주변의 상황을 받아들이다가 새삼스럽게 나를 의식했다. 불현듯 두통이 사라졌다.
나는 치료된 것일까. 주변의 모든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몸을 뒤척였다. 오른팔을 들어 바라보았다. 주사 바늘이 꽂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말끔했다.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주변은 더욱 밝아졌다. 지금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위치에서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무의식 중에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누워있던 침대의 상체 부분이 들어 올려지는 것이 느껴졌고 자연스럽게 상체를 세울 수 있었다.
“궁금하신 것이 많을 거예요.”
아까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 여성이었다. 그녀는 웃어 보이더니 역시 의식하지 못했던 침대 옆 커튼을 젖혔으며 순간 밝은 빛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창밖을 바라보자 그림 같은 파란 하늘에 순간 몸이 제대로 깨어나는 것 같았다. 눈에 힘이 들어갔고 멍했던 기분이 사라졌다.
“날씨가 참 좋아요.”
뭔가 대답하고 싶었는데 말이 안 나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관찰하듯 보고 있었다. 뭐랄까 지금의 나의 처지를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 저는 당신의 인간 주치의입니다. 지금까지 계약에 차질 없이 지안 님의 신체를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억하시겠지만 계약에 따라 깊은 잠에서 깨우게 되었어요.”
“아..”
드디어 말이 나왔으나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여성의 말이 온전히 들리긴 했지만 멍했다. 게약이라는 단어만이 강하게 내 의식을 붙잡았다. 그래. 난 치료가 된 건가?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안 님의 지속적인 DNA 돌연변이로 인한 문제는 사실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어요. 다만 이제는 상당히 안정화된 상태입니다. 일 년 기준으로 돌연변이 발생률이 5% 정도이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지안 님 몸속의 - 정확히는 혈관 속의 봇들이 돌연변이 발생 시 반응하고 조치합니다. 하루 이틀정도 몸이 힘들고 병원에 계셔야 할 수도 있지만, 그.. 죄송합니다. 아 네 독감. 독감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지.. 지금의 상황이 완치라고 파.. 판단을 한건가요?”
한 문장을 말했을 뿐인데 숨이 차는 것 같았다.
“아, 네. 송구합니다만 완치라고 보긴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깨우게 된 것은 계약 때문입니다.”
계약. 무슨 계약 조건이 있었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완치 시 깨우는 것 외엔 또 무슨 계약이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