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 4/5

by 오십이

세상은 오래간만에 축제 분위기였다. 지구로 다가오는 행성의 위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지구에서 쏘아 올린 핵폭탄은 성공적으로 행성의 크기를 감소시켰다. 폐기된 누리의 계획대로 진행된 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 날만큼은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기뻐했다.


나는 더 이상 출근할 필요가 없이 집에서 쉬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어느 정도 격리된 구역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 또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으며 내가 뉴스를 통해 보던 폭동이 일어나고 혼란스러운 지역으로부터 보호되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주선 또는 방주에 탑승할 자격이 주어지는 건가. 늘 조용한 이곳은 지루했다. 어느 날 문득 이 지역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알 수 없었고 이 집에서 산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데커가 생각이 났다. 데커가 놓고 간 카드는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데커..?”


갑자기 카드에서 홀로그램 형태로 무엇인가가 표시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데커의 상반신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램프의 바바인가?


“오랜만이네요. 필요하신 것이 무엇인가요?”

“아. 저.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제가 살고 있는 구역 밖을 구경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뉴스에서 보셨겠지만 많이 혼란스럽고 예전에 비해 치안이 좋지 않아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가보고 싶어서요. 내가 살던 곳도 구경하고 싶고..”

“살던 곳이라면 100년 전 긴 잠에 빠지기 전에 살았던 마을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벽에서 화면이 떴다. 거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나 아마도 화면에 비추인 거리가 내가 살았던 거리의 현재 모습인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전한 편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지안 님은 현재 중요인물로 특정되어 있기에 이곳 치안 담당 부서에 사전고지를 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계시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생각보다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도심을 갈 수 있었다. 길을 많이 헤맸지만 그때마다 데커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도심은 한적했고, 무장을 한 경찰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그 경찰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도대체 인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길을 헤매고 머뭇거릴 때마다 데커는 어디서든지 나타났다. 도시 곳곳에 데커 같은 로봇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나타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구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이 헤매지 않고 내가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예전 기억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백여 년은 역시 긴 시간인가 내가 추억할 만한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흔적이 곧 그렇게 되겠지.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카페같이 보이는 곳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깨어난 후 커피를 한 번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가게를 들어갔다. 의외로 내부는 많이 익숙했다.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정말 사람들이구나. 심지어는 주문을 받는 존재도 인간이었고 음식을 만드는 존재도 인간으로 보였다.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주문하는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보았다. 그가 씩 웃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긴 잠자다 깨어난 사람?”


난 놀랐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최대한 옛날과 비슷한 느낌을 내었다고 했다.


커피를 한 잔 하며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리스타였던 그도 5년 전에 잠에서 깨어났었다고 했다. 깨어난 이후 적응하면서 벌어졌던 일. 그 나름대로의 회상 그리고 내 이야기 등등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렀다. 바리스타의 이야기 중 우리가 애완동물을 돌보고 키우듯이 흡사 AI들이 우리 인간들을 돌보고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긴 잠을 자기 전, 고양이를 키웠던 적이 있다. 가끔 삶이 지쳐 힘들 때 아무 생각 없고 편안해 보이는 집 안의 고양이를 보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재 인간들을 돌보는 AI도 우리 인간들을 볼 때면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언듯 했다. AI가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럴지도.


“이런 말 하기 참 애꿎은 시기이긴 하지만 또 들리세요.”


그는 내가 갈 준비를 하자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잠시만요.”


그는 뒤쪽 어딘가로 들어가더니 한참 뒤에 나왔다. 그 사람이 건네어준 종이봉투엔 두 병의 술이 들어있었다.


“요샌 구하기 쉽지 않죠. 아끼는 술인데 드리고 싶네요.”


처음 만난 나에게 이렇게 선물까지 전해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자주 이 가게를 들리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다가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연락이 왔다. 서명이 필요한 양식이 전달되었다는 안내와 함께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서약서에 동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때마침 서쪽으로 지고 있는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다가 동의하지 않고 우주선 탑승을 하지 않겠다를 선택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주인이 준 술을 한 병 뜯었다.


오래 살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구의 끝을 보려 하고 있다. 많이 지쳤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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