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지막으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누리 AI의 전신은 내가 잠이 들기 전 연구했던 사회망관리 AI 시스템 오메가였다는 것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방이 환해지고 멍한 상태로 내가 본 내용을 곱씹는 도중 누군가가 노크를 한 후 들어와 나와 대화하기를 원했는데 그는 해체된 누리 AI 시스템을 우주선에 복원하기 위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었다. 머릿속이 폭탄을 맞은 듯 멍했다.
내가 긴 잠을 자기 전 계약에 의해 내가 깨어났을 때 사회적응을 관리해 주기 위한 담당자를 다음 날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잠들기 전에는 이러한 로봇이 공장에서나 유용했었으나 이제는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수준이 된 것 같다.
그는 역시 인간이 아닌지라 현 상황에 대해 전혀 동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많은 일을 했다. 표현이 이상한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 었다.
“두 번째로 보신 아파트가 마음에 드신다는 것이지요?”
“네. ”
“... 계약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5시 정도엔 입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입주 청소 요청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청소 시작합니다.”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내게 필요한 조치를 그때그때 해내었다. 묘했다.
그날 오후 나는 새로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데커라고 부르라고 했다. 데커는 나에게 작은 카드를 주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이 카드로 절 부르시면 됩니다”
내가 보기엔 그저 작은 카드였는데 데커라고 부르면 자신과 연결된다고 했다. 자신을 호출할 때 참조하게 되는 주변정보 및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고지를 하고 내가 승낙을 하자 그는 카드를 탁자에 놓고 갔다.
다음날 나는 데커의 안내로 누리 AI를 복원하기 위해 작업을 할 연구소로 향했다. 거리는 한산했고 겉보기엔 평화로웠다. 뉴스에서는 늘 폭동이 발생했고 폭동진압이 일상이었지만 내가 집과 연구소를 오가는 길은 다른 세상인 듯 조용했다.
첫날만 해도 과연 내가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으나 누리 AI가 사회를 관장하게 된 이후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희박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기반 시스템의 최 하단 계층에는 아직 사람의 손으로 구현되었던 코드들이 있었다. 문서화들은 되어 있어 단편적인 부분들에 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았겠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을 구현하고 수정하는 것과 관련한 경험이 있는 자는 찾기 힘들었다. 흡사 과거에 원주민이 멸종하며 그 문화와 언어가 사멸한 것처럼 나 같은 시스템 엔지니어들의 존재는 멸종하였으며 그러한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기 위해 만든 언어들도 사라졌거나 고대유물에 적힌 고어와 같은 것이 되었다. 불과 백여 년 만에 세상은 크게 변했다.
누리와 같은 베이스였지만 좀 더 엄격하게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룰을 지키는 미르라는 AI와 일을 하게 되었다. 미르는 누리의 소스와 저장소의 직접 접근이 불가했다. 그리하여 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케이블을 연결해 누리의 시스템에 접속해서 미르가 요청하는 부분을 찾고 검증하고 우주선에 이식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재미있었고 할 일이 많았다. 내가 잠자기 전 시절의 AI 소스들을 찾고 그중 적당한 모델을 골라 작동시킨 후 이를 이용하여 다양한 툴과 매크로를 만들었다. 그러한 도구를 준비하는 데만도 일주일이 걸렸다.
누리 AI는 폐기되었으나 그가 진행시키고 있었던 우주선 계획이나 일종의 방주를 만들어 최대한 인류의 멸종을 막아보고자 하는 계획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수십 년간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매일 출퇴근을 하며 때로는 야근을 해 가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세상은 마지막을 향하여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었으나 나는 사실 큰 실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달여를 일한 이후 우주선과 일종의 방주에는 성공적으로 누리의 시스템 일부가 이식되었으며 그 기반 위에 미르가 이식되었다.
이식이 완료되고 난 후 나는 내가 깨어난 다음 날 만났던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는 꽤 직급이 높은 자인 듯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빠르게 저희가 원하는 바대로 작업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미르의 요청에 따라 대응한 것이 전부입니다.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그 외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 이십여 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그는 갑자기 화제를 돌려 우주선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이 8월 19일이죠. 9월 23일에 우주선의 발사가 잠정적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측에 의하면 10월 2일에 행성이 지구에 도착을 하게 된다는 건 아시는 내용이시겠지요.”
“....”
“내일 행성의 위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핵폭탄을 탑재한 로켓이 발사되는 것은 뉴스를 통해 보셨을 겁니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행성의 지구타격으로 인한 피해가 감소하여 어느 정도 뒷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 현재 전 세계의 이목이 이것에 집중되어 있지요. 그리고.....”
“9월 23일이라면 누리가 선택한 우주선 탑승자들에게 곧 연락이 가겠군요. “
”지안님은 우주선에 탑승하시게 될 겁니다. “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누리가 선택했던 목록에 있었던 것이었나.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몸이 완전하지 못하고 여러모로 인간의 좋은 표본이라고 할 수 없을 텐데..?
”지안님께는 이야기해도 되겠지요. 누리가 선정한 사람들의 목록은 최대한 공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지금의 인류의 다양성을 포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각 국가별 리더 또는 그 조직의 사람이라던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 같은 정황이 있습니다. 인류의 리더급으로서의 명망이 있거나 인정받은 사람들은 일절 없어요. 게다가 AI의 사회 전반적인 관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던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도 제외되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누리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누리가 인적이 드문 시베리아 벌판에서 완전 자동화 공장을 구축하고 거기에서 우주선과 방주를 제작하고 있던 사실이 유출된 이후 세계의 힘 있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지요. 그리고 인류의 리더급으로서 명망이 있거나 능력이 있다고 보이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제외된 것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결국 타협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누리가 작성한 목록 기준으로 우주선과 방주의 탑승자가 결정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지안 님은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우주선에 탑승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