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과 상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모성애에 대한 고백
“솔솔 불어온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각자마다 독립적인 경험과 추억을 가지지만, 공통적으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공감됩니다. 자녀들에게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는 내용 면에서는 상이할 수 있어도, 그 궁극적인 목적은 가족의 안녕과 행복으로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같은 민족임에도 서로 다른 사회와 국가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두 어머니의 삶을 다룬 작품, 연극 <기도문>에 대한 감상입니다. 무대 위에서 고백하듯이 풀어내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깊은 사유를 선사합니다.
연극 <기도문>은 2024년 키위아트에서 초연된 이후 현재 재연으로 공연 중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 직전 공연장에 나타난 북한과 남한에서 각기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두 여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겪은 이야기를 고백하듯이 풀어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품의 부제인 ‘Litanei’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독일어로 ‘간구기도’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는 ‘간절히 구하는 기도’라는 뜻을 가집니다. 극 속 두 여인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인연과 자녀, 행복을 꿈꾸며 바랐던 소원, 그리고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까지 염원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이 단어 하나에 잘 내포하고 있습니다. 연극 <기도문>은 이처럼 간절히 구하길 원했던 과거와 미래를 각자의 삶의 회고를 통해 밀도 깊게 풀어냅니다.
연극 <기도문>은 사실 특별한 연극적인 연출이나 화려한 동선을 사용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배우의 화술과 표현, 그리고 노래 등 온전한 연기 역량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사실주의 모노 드라마의 성격이 강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 보이는 두 여인의 이야기가 배우님들의 연기를 통해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관객들은 마치 클래식 공연을 보듯 숨을 죽이고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극의 후반부에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의 '모든 영혼을 위한 기도'(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곡)를 연주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한 곡의 선율은 두 여인이 서로 다른 삶과 소원을 가졌지만, 궁극적으로 닮음을 지닌 어머니라는 점을 잘 나타내며 관객들의 마음에 공감과 울림을 일으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매 순간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단지 이를 내비치지 않을 뿐이라는 점을 연극 <기도문>은 두 여인의 회고를 통해 극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상실을 겪은 이 두 여인의 고백은, 여성이자 아내이며 어머니로서 끝내 되찾을 수 없는 사랑의 존재를 되찾기를 위한 간절한 소원을 '기도'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작품은 가족이 지닌 진정한 사랑, 그리고 상실 이후 다시는 향유할 수 없는 어머니의 아픔을 섬세하게 나타냅니다. 두 여인의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며 끝내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더욱 간절히 구하고, 그 상실로 인해 더욱 아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연극 <기도문>은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대사와 연기의 밀도에 압도되는 탁월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상실 이후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 지닌 진정한 사랑과 그 상실의 아픔, 그리고 다시는 향유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간절한 기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싶은 분이라면, 연극 <기도문>을 꼭 한번 만나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분명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당신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따뜻한 울림으로 남아, 어쩌면 멋쩍었던 안부 전화 한 통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연극 <기도문>을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기도'는 무엇이었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