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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사를 하게 된 이유

어느 연구자의 일기

by 김박사의 생각들

내가 박사를 하게 된 이유

나는 UNIST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김박사라고 불리는게 어느정도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칠흙같던 대학원 학위과정 동안에는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발버둥치며 박사졸업을 하기 위해 끊임 없는 절벽끝으로 나를 몰아세웠던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내 주변환경도)

최근 불현듯 '내가 왜 박사를 하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내가 박사라는 학위를 언제부터 목표로 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사실, 돌이켜 보면 연구중심대학인 유니스트에 입학했을때부터 운명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나 싶다. 우리들 사이에선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고, 내 기억으로는 50%를 훌쩍넘는 1기생들이 대학원으로 진학한걸로 기억한다. (그 중 90%는 자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주변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유니스트에 1기로 입학하면서, 나는 당돌하게도 '인류 지성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학위의 끝은 박사 아닌가?, 멋진데?' 라는 이유로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제와서 보면, 박사의 본질과는 많이 벗어난 동기이긴 하다.

하지만 좀 포장하자면... 나는 인간이 어디까지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나도 그 여정에 기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박사과정을 밟아보니 이런 동기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면 현실은 매우 매우 달랐다.


죽을만큼 힘든 과정

박사과정은 극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단순한 지적 탐구를 넘어, 끝없는 실험과 연구, 논문 작성, 그리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대학원생 형은 항상 '잘 되면 실험이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나 역시도 안되는게 당연할 정도로 어려운 학문의 길에서 그야말로 갈려나갔다.

매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이 길이 과연 나에게 필요한 길인가?'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나는 어떻게든 버티고 버텼다. 박사과정은 단순한 지적 성취가 아니라, 나 자신을 시험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많은 박사분들이 공감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박사의 정의는 '죽을만큼 힘든 걸 버텨냈다 (존버했다)' 인 것 같다.


박사의 정의

보통 박사의 정의는 '박사는 기존 지식의 한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설정하며, 학문적 기여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이다. 박사와 별개로 학사와 석사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 학사 : 기본적인 개념과 도구를 배우는 단계, 이론을 익히고 문제 해결 능력을 기름.

- 석사 : 연구 방법론을 익히고, 특정 분야에서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법을 배움.

keep-pushing_.png 박사는 인류 지식의 한계를 조금 넓힌 사람

어쨋든 박사는 위 그림 처럼 인류 지식의 한계를 정말 눈꼽만큼이라도 넓힌 사람이긴 하다.


현대 연구에서 박사가 필수인가?

현대 연구에서도 과연 박사학위가 필수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박사학위 없이도 연구는 가능하다. 산업계에서도, 스타트업에서도, 심지어 일부 학계에서도 박사학위 없이 뛰어난 연구를 수행하는 사례가 많다.

스스로를 테크노킹이라고 부르는 일론머스크도 세상을 바꾸는 테슬라, 스페이스 X, 브레인싱크등을 창업하고 엄청한 테크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그의 학위는 학사다. (박사를 지원했지만 창업을 위해 몇일만에 자퇴한 것으로 안다.)

요새 같은 4차산업 시기에 좋은 스승을 어디에든 있다. 유투브로 배우던, 대학원에서 배우건 무슨 상관인가, 독립적인 연구 수행은 인간이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 자체는 꼭 배워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은 학위의 유무와 관계없이 필수적이다. 효율적이고 심도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리서치 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존버의 상징, 박사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사과정을 가장 상스럽고 짧게 표현한다면... '존나 버티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지식 탐구만으로는 완주할 수 없다. 끈기와 집념, 실패를 견뎌내는 힘이 없다면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속을 두손으로 비벼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고 정말 외롭고 힘든 과정이다. 유니스트에서 심리테스트를 한 거의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하는 단계' 로 진단된다. 물론 나도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오죽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소변 마렵다' 가 아닌 '자살 마렵다..' 라고 생각한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나는 버텼고 그 과정에서 내 한계를 시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박사는 단순한 학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잘버텼다. 이제 인류삶에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창업화하여 기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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