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구자의 일기
국제학회는 전세계 연구자들이 모여 자신의 연구결과를 포스터, 구두발표 형태로 공유하는 학문의 장이다.
내가 처음으로 국제학회를 방문한 것은 "고든 리서치 컨퍼런스"였다. 이 학회는 해당 분야의 최신 연구와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학문적 교류의 장으로서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매년 학회 개최 장소가 바뀌지만 내가 갔던 2013년도 고든리서치 컨퍼런스 분과는 이탈리아 루카 지역에서 열렸고 연구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공부하고 투어하며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 중에 한 명과는 추후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함께 보냈다. 10년이 넘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나의 연구와 교육 철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고든 리서치 컨퍼런스에서는 내 분야에서 저명한 교수님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가지 에피소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 할아버지 교수님이 내 포스터 앞에 서서 연구 내용을 자세히 물어보셨다. 나는 이분이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인가 싶어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학회가 끝난 뒤 그분이 사실은 내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대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세종대왕에게 "ㄱ자를 아시나요?"라고 물어본 격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나에게 겸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상대방이 누구든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이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교수님께서 지인에게 '저 친구 (본인)는 박사졸업 후에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스닥 (박사 후 과정)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국제학회는 단순히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 이상이다. 학문적 성장을 위한 다채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첫째,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연구자로서 성장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은 연구의 깊이만큼이나 중요하다.
둘째,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접하고, 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서로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다. 이는 학문적 협력의 기반이 되며, 종종 새로운 연구 주제의 영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셋째, 관련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 많은 학회에서는 스폰서 기업들이 참가하여 첨단 기술이나 제품을 소개하는데, 이는 학문과 산업 간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의 연구와 교육 활동에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내가 직접 운영하는 랩온어스쿨에서도 학생들이 국제학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를 직접 발표하고,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적 성장과 글로벌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학회에서 얻는 경험이 단순히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제학회는 단순한 학문적 행사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고, 스스로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장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연구자에게 있어 가장 값진 자산 중 하나로 남는다. 나 역시 국제학회에서 얻은 교훈과 영감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연구와 교육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