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시동이 켜진 채 세워진 오토바이. 그가 온 것이 틀림없다.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잰걸음을 한다. 엘베 앞에서 그와 마주친다. 유광의 하이바는 그의 얼굴은 감춘 채 정작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전사의 후예처럼 그는 나의 하루 내면의 천불을 끄기 위해 온 소방수 같다.아니, 뜨거운 아드레날린을 깨우기 위해 불을 지르러 온 프로메테우스 같다.
그의 이름은 라이더.
교회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전도사가 있다면 그는 인간의 행복을 들고 달리는 전도사이다.
라이더들이 없었다면 어떨까. 그들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이 가장 필요한 것을 전해주는 전령사가 아닌가.
류승룡 씨가 고구려벽화 앞에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지체 없이 "배달의 민족"이라고 답했다. 김봉진 씨가 쏘아 올린 배달의 민족은 중의적인 의미와 함께 우리가 진정 배달의 민족임을 일깨웠다.
*김봉진: 우아한 형제를 설립하고 음식배달 플랫폼인 배달의 민족을 론칭. 후에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후 엑시트에 성공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더기빙플레지에 서약한 사람이기도 하다.
*더기빙플레지: 생전 또는 사후에 재산의 절반이상을 사회환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자발적 기부클럽으로 재산이 1조 1천억 원이 되어야 자격조건이 주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전인]이라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편지를 배달했다. 이들은 배달할 지역을 꿰뚫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메신저]로 불린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배달했다. 그들은 전문배달인이였으며 [용달사]라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배달실수란 용납될 수 없었다. 심지어 다량이 현금도 배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전문성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그들은 속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그들에 대한 고개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그들을 통해 받은 물품은 확인조차도 안 했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용달차라고 부르는 차가 배달업체인 용달사 에서 온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이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것을 독특하게 바라보지만 한국인들의 상호간의 신뢰문화는 이처럼 전통이 깊다.
한국전쟁의 격변기 때 잠시 주춤했던 배달은 1960년 경제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다시 촉진되었다. 신문과 우유 배달이 인기가 있었다. 남대문 시장에는 켜켜이 쌓아 올린 은빛쟁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도시의 음식점들은 직사각형 플라스틱통에 점심식사를 넣어 사무실에 배달하곤 했다.
1990년대에는 집 앞까지 하루 이틀 만에 배달되는 택배서비스가 도입되었다. 디지털과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전 덕분으로 지금은 오후 11시 59분에 주문하면 6시간만인 다음날 새벽 식재료가 신선하게 문앞까지 배송된다.
우리의 배달 문화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전통은 오래되었으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라이더들이 고객의 음식에 손을 대어 물의를 일으키는 기사를 봤다. 그것은 질 높게 이어온 우리의 배달전통을 훼손하는 일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이어 온 전인과 메신저인 우리 선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한 택배차랑의 진입금지와 엘베사용을 제한한다는 일부 아파트의 기사를 보며 쓸씁함을 감추지 못했다. 가끔 엘베를 잡아놓고 물건을 배달하는 통에 시간지체를 겪은 일이 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위해 배려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실로 그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어떨지.
1768년 학자인 황윤석은 그의 친구들과 점심으로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내용의 일기를 남겼다.
18세기, 친구와 점심으로 냉면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는 행복, 그 행복을 가져다 준사람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자.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 배달의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