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꺼내세요!

by RECO

옛날에 우리 동네에 미친 여자가 있었다. 언덕꼭대기 서민아파트로 엄마와 장을 보고 오를 때면 잘 차려입은 여자 한 명이 연신 중얼거리면서 내려왔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시며 남편한테 이혼당하고 애까지 뺏긴 다음에 저렇게 됐다고 안 됐다 하셨다. 젊은 나이에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 그분을 나 또한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오늘도 TV에선 소통전문가 한분이 청중을 앉혀놓고 강의 중이다. 친한 친구에게도 자신의 치부를 말하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자신얼굴에 침 뱉기일 뿐 무심코 하소연하듯 내뱉은 말은 약점이 되고 가십거리로 전락한다고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힘들어도 좋은 일만 있는 척. 우리는 이미 "척하는 것"에 익숙하다. SNS는 "척하는 것"을 연습할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십 년 전에 나는 정신과에 간적이 있다. 기록이 남을까 봐 걱정도 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말풍선을 터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담실장님과 30분 남짓 원장님과 30분 남짓 얘기를 나누고 6만 원 정도의 돈을 내고 나왔던 것 같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며 처방은 내주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그 당시 나를 짓누르는 말들을 토해내고 나온 것이다. 시동을 걸고 앉았는데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전철 안에서 우리는 고개 숙인 사람들을 자주 본다. 모두 콩나물처럼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보고 있다. 아니 듣고 있다. 정규 교육 내내 학교와 학원에서 들었다. 엄마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해서 또 들었다. 정치인들의 유세를 듣고 연예인들의 혼자사는 얘기를 듣고 쇼호스트의 물건사라는 말을 듣는다. 귀는 두 개고 입은 하나니 말은 줄이고 들으라는 뜻이라며 또 듣는다.


듣기만 하고 말하지 못하는 슬픔이라니.. 가슴속에 천불이나도 꿀꺽 삼켜야 하는 슬픔이라니.. 말하고 싶어도 내 치부가 되고 약점이 된다니.. 정신과에 가면 기록이 남는다니.. 미칠 노릇이다.

좋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우리가 십수 년간 연습해 온 "척하기"를 이용한 방법이다.

준비물은 무선이어폰이다. 방법은 무선이어폰을 꽂고 통화하는척하는 거다.누군가는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야 길을 겉으며 혼자 중얼거리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요새는 혼자 얘기한다고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다. 누구에게라도 말을 하고 싶은데 치부가 될까 봐 걱정된다면 혼자 나가서 걸어라. 걸으면서 말을 하라. 사람들은 친구와 무선이어폰으로 통화하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하는 거다.

나를 무시한 행동 아니니? 걔는 맨날 지 자랑하러 모임에 나오나 봐. 시어머님도 그래 언제나 동서편만 들어. 우리가 돈이 어디 있니? 왜 돈을 꿔달래? 삼수했는데 또 떨어졌잖아. 너무 속상해.


호떡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는 내면 속 말들을 토해내고 나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속이 시원할 것이다. 정신과에 갈 필요가 없으니 돈도 안든다. 상대가 없으니 약점이 될 수 없다. 산책까지 하니 운동도 된다. 혼자 떠든다고 오해받을 일도 없다. 나는 가끔 이 방법을 쓴다. 꽤 후련하다. 누구도 날 이상하게 본 적도 없다. 하긴 본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