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내 인생에서 비켜!

by RECO

얼마 전 PD수첩에서 12억을 대출받아 17억 원의 아파트를 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접했다. 맞벌이를 하는 그들이 내는 돈은 원금포함 매달 5백만 원 남짓. 현재 그 집의 시세는 22억이라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은 것은 나 또한 하우스푸어로 오랜 시간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참 궁상맞았다. 아끼고 아끼고 아끼고 아꼈다. 옷을 좋아하는 나지만 당연히 내 취향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는 왜 싸구려만 입냐고 막말을 했고 나도 참지 못하고 싸움까지 했다.


내 삶은 국민은행과 함께 흘러갔다. 악착같이 산덕분에 목표의 대출금을 갚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상황을 맞이했다. 바로 "다음에"라는 녀석이다. "다음에"라는 녀석은 지난 10년간 무섭게 내 욕망과 시간을 지배했고 여전히 내 멱살을 잡고있다. 돌아보면 욕망은 늘 뒷전이었다. 먹고 싶었던 음식에 대한 욕망도 "다음에"였다. 하우스푸어를 벗어던지며 국민은행과도 이별했지만 "다음에"라는 녀석은 주홍글씨처럼 내 곁에 남아 있다.


내 하루는 "다음에"로 시작되고 "다음에"로 끝난다. 욕망을 뒤로 미루는 습관 때문에 삶은 행복하지 않다. 크든 작든 아파트하나 있으니 이사 갈 일 없고 안정적이라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았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긴 시간 돈의 노예로 살다 보니 "욕망 미루기"가 습관이 되었고 지속되고 다. 내 욕망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숨이 끊어질 듯 버티다가 "다음에"를 만나 다시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숱한 욕망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는데 아직도 "다음에"라는 녀석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욕망의 길 위에 서 다.


직장 동료 한 명은 점심시간에 두 개의 메뉴를 시킨다. 많지 않냐고 물으면 "먹고 싶다"라고 말한다. 남겨도 좋으니 원하는 것을 먹겠다는 것이다. 막차시간에 쫓겨 지하철로 뛰어가던 나를 뒤로하고 그녀는 유유히 예약된 택시에 올라탄다. 동료의 소비 스타일를 뒷담 화하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자 질문, 예를 들면,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달된 목표를 따르는 삶이냐. 아니면 지금 당장의 자신의 욕망을 존중하는 삶이냐.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물질이냐. 아니면 반대의 것이냐의 의문말이다.


요이땅! 화약냄새를 풍기며 시작된 서울 아파트를 향한 질주 속에 새털 같은 시간들과 영롱한 욕망들이 불태워졌다. 피니쉬라인을 겨우 통과해서 털썩 주저앉아 보니 문득 "지난 시간과 욕망의 에 대한 가치"가 떠올랐다.


생이 300페이지 한 권의 책이라면 그곳엔 무엇이 적혀있을까. 생이 다하는 날 텅 빈 병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서울에 아파트하나는 장만했으니 인생 잘살았다 할까..아니면...

인생의 절반 정도를 돈의 노예와 욕망 미루기로 살았으니 나머지는 시간의 주인과 욕망을 끔찍이 아끼는 나로 살아야겠다. 나는 오늘 이글을 쓴 기념으로 내생애처음으로 [남겨도 좋으니 먹고싶은것을 다 시켜]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