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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 카포 Feb 15. 2023

내가 혼자 영화를 보는 이유

출처: 시네21
영화는 지루한 부분을 편집한 인생이다


위의 알프레드 히치콕의 말처럼,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인생의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편집해 약 2시간을 보여준다. 그 하이라이트 안에는 사랑, 기쁨, 슬픔, 분노, 놀라움, 두려움 등 우리가 살면서 느낄 만한 모든 감정이 들어가 있다. 그 감정들이 배우들을 통해 표출되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공감하게 되고,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2시간을 집중해서 보게 되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무료하다고 느껴지거나, 고민이 많아지거나, 시간이 남아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 때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혼자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시간 동안은 나의 고민에서 떠나 영화 속 주인공의 고민과 영화 속의 갈등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혼자 보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여럿이서 보러 가는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에 같이 보러 간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과 가치관이나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가 재밌게 생각한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남들이 ‘이 영화 별로였어’라고 하거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남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 포기하는 순간들은 그 의미들을 퇴색시키기에 충분하다. 혼자 보는 영화는 남들과 함께 보는 영화와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다. 아무도 내가 어떤 장르의 영화를 보는지 신경 쓰거나, 나의 영화 취향에 간섭하지 않는다. 또, 그 영화에 대해 누군가의 생각을 듣지 않기 때문에 나만의 사고의 틀에서 영화를 계속해서 되새기며 상상의 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출처: 중앙일보

처음 혼자 영화를 보러 간 것은 고등학교 1학년, 2019년이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팝콘이나 음료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앉을 수도 있었다. 또, 2019년은 한국 영화 산업이 이른바 ‘기생충 신드롬’으로 매우 활발했던 해이기도 하다. 나 역시 고등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많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우리 집과 떨어진 도시의 고등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달에 한두 번씩 집에 오곤 했는데 집에 오게 되면 주변에 친구들도 없고, 부모님도 바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함께 할 사람들이 없어서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할 일 없이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꼈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시간을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서 무언가라도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찾아간 곳이 바로 영화관이었다. 그곳으로 무작정 찾아가서 당시 상영 중이던 영화 중 내가 보지 않았던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의 티켓을 끊고 팝콘과 콜라를 사서 영화를 봤다. 혼자서 영화관의 맨 뒷자리에 앉았을 때만 해도 조금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한번도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영화를 봐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영화가 시작되었고,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외로운 감정과 혼자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대한 의문은 말끔히 사라졌고, 나는 영화에 몰입하였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유해진, 류준열 등 여러 배우들의 열연과 수많은 액션 장면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동시에 독립군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의 국민들의 삶’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나는 그 액션 장면들과 배우들의 연기에 압도되었고, 그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나는 혼자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영화가 던진 화두와 고민들에 대한 생각들을 혼자 펼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들이 내가 집에서 누워 지낸 시간들보다 몇 배는 더 가치 있다고 느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서 혼자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영화 <조커> 스틸컷

그렇게 나는 집에서 시간이 날 때면,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보는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잠시나마 고민들을 잊게 만들어주어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해주고, 그런 리프레쉬(refresh) 과정을 통해 고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나는 수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였기 때문에, 학교 특성상 너무나 많은 교내활동들이 있었다. 교내활동을 하게 된다면 공부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매우 부족해지기 때문에 성적과 교내활동을 함께 잡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나 나는 둘 다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는 시간을 줄여서 하루에 3~4시간만 자고 활동과 공부를 하고, 매일매일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생활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성적도 떨어졌고, 건강도 많이 나빠졌다. 계속해서 바쁘게 살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울함에 빠져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조금 학업에서 떨어져서 고민들과 잡생각들을 버릴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일이 바로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그때 흥행하고 있었던 <조커>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조커>는 매우 어둡고 무서운 배경에서 계속해서 주인공 ‘아서’를 보여준다. 그 어두운 배경은 보다 더 배우의 연기에 집중할 수 하고, 나 역시 주인공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2시간이 넘는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학업이나 성적에 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한 인물에 집중하였다. 또한,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인물의 선택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원래 가졌던 고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러고 충분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마치고 난 뒤에 다시 처음부터 고민에 대해 생각하면,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보다 쉽게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커>를 본 날, 나는 결국에는 교내활동과 성적 중 택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활동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 이후에, 나는 지금도 복잡한 고민이 있을 때, 조금 더 쉽게 고민을 생각하기 위해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곤 한다.



하지만, 2020년 이후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영화 산업이 침체되었고, 나 역시 영화관에 가는 것이 꺼려져서 한동안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집에서 혼자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로 영화를 봤지만, 집에서 혼자 보는 것과 영화관에서 혼자 보는 것은 몰입도, 분위기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학교도 나가지 않으면서, 집에서 누워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졌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질 때마다 다시 영화관을 찾았고, 혼자서 수많은 영화들을 봤다. 그 많은 영화들을 보고 혼자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성숙해지고, 영화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으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코로나19 확산에 의한 일상의 변화로 생기는 우울감이나 무기력증’도 겪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고3의 수험생활에서도 나는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을 통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고 큰 우울함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비교적 잘 넘어올 수 있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스틸컷

영화라는 예술 작품은 다른 어떠한 예술에 비교했을 때에도 그 집약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예술이다. 수십년을 단 몇 시간으로 요약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3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풀어놓기도 한다. 이러한 영화의 집약적인 특징은 자연스레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그렇게 나 역시 영화에 몰입한다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특히 영화를 혼자 보게 될 때 그 영화에 몰입한다는 것의 가치가 가장 극대화된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몰입’을 통해 나는 내 인생의 여러가지 고민들을 해결하는 데에 실마리와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삶이 나태하거나 지루할 때 삶에 활력을 받기도 했고,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보다 성숙해질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혼자 영화보기를 통한 몰입’이 내 삶에 준 영향들을 항상 떠올리면서 시간이 날 때면 계속해서 혼자서 영화관을 찾을 것이고, 그렇게 혼자 보는 영화는 앞으로도 내 삶을 더 윤택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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