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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 카포 Dec 31. 2023

2023년을 보내며, 우리 모두에게.

갈등의 시대. 분열의 시대. 혐오의 시대. 개인주의의 시대. 외로움의 시대.

2023년 우리 사회의 초상이다.

절망을 넘어 소멸로 향한다는 어두운 전망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점점 늙어가다가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소멸할 거라는 예측이 담긴 통계들. 비전을 상실한 채, 갈라치기와 상호비방이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가져다주는 기형적 정치 구조. 그 산물인 정치의 소비자에서 각 진영의 극단적, 배타적 투사가 되어버린 대부분의 국민들. 매번 선거철마다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OECD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라는 그들의 성적표. "신계급사회"라고 까지 불리는 고착화된 불평등. '해도 안된다.'며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향하는 사람들. 절망적 에너지가 미디어를 통해 치환되고 증폭되어 분출되는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정치적 갈등, 빈부격차,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 지역 갈등, 평균 올려치기와 비교사회 등 '심리적 내전 상태'라고 까지 불리우는 매년 심화되는 상호 비하와 혐오라는 부산물. 올해의 사자성어인 견리망의가 암시하듯, 이를 해결하기보단 오히려 불을 붙여 이익을 취하기 바쁜 정치, 언론, 재계의 우리 사회의 리더쉽.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디스토피아가 당장 내일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폭풍전야의 모습이다. 마치 사회 전체가 폰지 사기의 끝에 다다른 것 처럼도 보인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심각한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점점 늙고 병들어 가고 있다. 지금 '잃어버린 N년'의 격랑의 초입에 와 있는 듯하다.

소음이 가득한 불친절의 시대에 또 한 해를 살아낸 모든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공적인 한 해였든, 실패만을 반복한 한 해였든, 떨리면서 내딛은 나아간 그 모든 발자국이 가치 있는 경험일 것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경험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 리비도가 현재 닿고 있지 않은 무의식의 영역에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각인되어 의식의 깊은 곳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너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성공의 망상과 실패의 무너짐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에고를 깎아내지만 않는다면, 그 모든 경험이 무의식과 전의식에서 언젠가 힘이 될 것이라 합니다.

예년과 다름 없이 그저 그런 한해를 보냈다면 아무 일 없이 무료했던 게 아니고, 위기의 순간들이 전부 나를 비껴갈 만큼 행운이 따랐던 것일 겁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다 한들 자아를 깎아내지만 않으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실패에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실패를 가르칠 뿐입니다. 입시 시스템 하에서 우리의 대부분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입시 시스템에 강한 서열화로 대표된 엘리트주의를 주입한 결과이고, IMF 이후의 사회의 극한의 대립과 비교를 학교에 주입한 결과입니다. 입시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입니까. 정말로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고, 본인을 몇년 간 끝없이 쥐어짜내야 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이 기형적인 사회구조와 입시제도 아래에 선 10대의 제 자존심, 에고는 내 삶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그래도 남들보다 내가 이건 잘한다, 얘보다는 잘한다라는 열등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아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아가 흔들릴 때 그것을 깎아내는 게 옳은 것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실패에서 나오는 법을 잘못 배운 거죠.

불친절과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 내년에도 자신과 타인에게 친절합시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입니까. 멀리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의 먼지일 뿐입니다. 그마저도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의 찰나를 유영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를 영원처럼 살아내는 것도 우리에게 부여된 숙명과 같습니다. 니체가 그랬던가요. 우리는 웃고 춤추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 어떤 순간도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고, “삶의 찬미”가 아닌 순간이 없다고.

결국 그 어느 사람도, 그 어느 순간도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전하듯, 타인과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우리의 삶이 곧 지옥과 같듯, 우리의 시선과 태도 역시 타인을 존중하고 그 하나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위의 유명한 말을 남긴 사르트르가 남긴 또 다른 이론인 판옵티콘. 모든 개인을 객체화하고 감시하는, 개인의 실존에 있어 최악의 체제.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와 더 가까워 보이는 안타까운 현실이 섬짓하게만 느껴집니다.

‘세계-내-존재’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하이데거의 이론인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계 안에서 정을 붙인 채 부대껴가며 몰입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제를 망각해 살아가기 쉽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타자를 도구화해 그들과의 경쟁, 고립, 이기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를 “퇴락”이라고 부르고, 세속의 가치에 빠져 우리는 자신을 소외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고 그 세속의 가치의 무의미함을 알기에, 불안과 권태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결의”를 통해 ‘세계-내-존재’라는 우리의 본질에 다다르고, 함께 살아야만 하는 타인에 대한 자비와 친절을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본인이 선택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실존적 자아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 가치보단 세속-합리적 가치를, 자기표현적 가치보단 생존적 가치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즉, 돈이라는 획일적인 목표를 향한 이기주의적 태도가 만연한 국가라는 겁니다.

가끔 보면, 한국 사회는 말로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하지만, 일상 생활에선 매번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수자에 대한 집단 린치를 가하며, 그들의 자유는 깡그리 무시하곤 합니다. 사회 전반에 스며든 전체주의의 망령이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주의가 정착함과 동시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며 심리적으로 ‘먹고 살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 ‘왜 남들 하는 대로 안해?’라는 획일화와 이기주의로 변질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형적인 집단이기주의적 파시즘으로, 현대판 판옵티콘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도 듭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갈등을 건설적으로 극복하는 것.

Let’s agree to disagree.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긴 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내 편이면 좋아하고 남의 편이면 증오하는” 불친절의 시대입니다.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악마’도 ‘적’도 아닌, 그저 나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임을 우리 사회는 망각한 듯 합니다.

나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의 무게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만의 십자가를 매었을 겁니다.

2024년은 서로에게 친절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다 실수에 관용적이고, 다른 사람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며 연대하고 공감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3년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말처럼 저를 포함한 모두의 2023년도 돌아보면 아름다웠고, 뒤돌아보면 떨리며 앞으로 내딛은 모든 발자국에 축복이 가득했길 소망해 봅니다.

유명한 축사의 몇 구절로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주제 넘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의 모든 날들에도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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