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리뷰
김초엽 작가는 지금 대한민국 소설계에서 떠오르는 SF 작가 중 한 명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초엽 작가는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SF 소설과 다른 소설들의 사이 어딘가에 김초엽 작가의 문학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단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토대로 인간에 대한 문제, 도덕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다룬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가장 작품성을 인정받은 단편인 <관내분실>이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처럼 인간의 본질, 본성에 대해 아주 세밀한 담론을 던지는 김초엽의 세계관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 SF소설의 미래 사회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매우 간단하고도 명쾌한 전제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로 김초엽의 세계관이다. 또한, 김초엽 작가는 매우 다작 작가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설집이 나오고 있다. 첫 장편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 역시 김초엽의 세계관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지구 끝의 온실>은 더스트라는 재앙이 인류에게 닥쳐 대부분의 사람이 죽고, 남은 사람들은 더스트를 막는 시설 안에서 대규모로 살아가다가 그 문제를 해결한 후의 인류를 다루고 있다. 더스트라는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모습, 이타적인 사람들은 죽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더스트를 막는 돔 안에서 살게 되는 모습, 그리고 그 끔찍하고도 이기적으로 변한 세계를 재건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상처가 지나간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는 소설을 좋아한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면서, 그런 이야기들에 매우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김영하 작가는 남겨진 이들의 아픔과 상실감에 집중했다면, 김초엽 작가는 모두에게 다가온 재앙에서 다른 사람들의 희생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이후의 사회에서 어떻게 되는지에 집중했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남겨진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다른 사람들이 죽은 한편에서 자신들은 살아남았다는 일념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삶을 영위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거나, 그들을 죽인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재난을 극복해 다시 한 번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이타적인 인간이다.
결국, 이타심이 이기심을 이기는 곳이 아름다운 곳 아니겠나하는 결론에 닿는 어찌보면 뻔한 스토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SF적 상상력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보는 다양한 인간 군상, 사람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 등 수많은 철학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처받은 이들이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단순히 이상적인 일을 넘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끝낸다는 결론에서, 낭만적이고도 아름다운 인간에 대한 경이와 인간이라는 존재의 사랑과 이타심이라는 아름다운 특성을 볼 수 있다. 결국 세계를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 세계를 다시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 역시 인간인 것이다.
조금은 주제와 떨어진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면, 나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나는 SF장르에 대해 상당한 흥미가 있다. 프랑스의 대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라는 책을 통해 나는 처음 책을 읽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낀 것 같다. <제3인류>는 에마슈라는 현존 인류보다 작은 새로운 인류의 탄생과 기존의 인류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이기심, 본성 같은 여러가지 철학적 담론을 던지는 책이다. 그런 철학적 담론 역시 매우 의미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6권이나 되는 긴 책을 한 번에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엄청난 필력과 상상력이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2학기에 자유학기제를 보내고 있었고, 당시 선생님들은 자유학기제의 도입 첫 해였기 때문에 수업에 있어서 여러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그 시도 중에서 국어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수업을 진행했었다. 어떻게 보면 도서관에서 자유시간을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도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수업을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만화책이나 보거나 잠을 잤던 것 같다. 그러다 겨울 즈음이 되어서 잠을 자기 위해서 배고 잘 책을 찾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있던 아주 표지가 예쁜 책을 발견했고, 그 책이 바로 <제3인류> 1권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오랜만에 글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열어서 보기 시작했다. <제3인류> 1권은 그 후로도 여러번 보았지만, 정말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고, 2권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2~3일 만에 6권까지 되는 책을 다 읽었다. 그렇게 수천 페이지를 읽다보니,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직후에 그 당시에 베스트셀러들을 골라서 읽다 보니 사회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런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SF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이 있다. 특히, SF 장르이면서 사람과 사회를 다루는 기존의 소설과 SF 소설의 간극에 있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이라는 젊은 작가가 만들어나갈 세계관이 너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