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리뷰
추리 소설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대부분 극강의 서스펜스, 엄청난 반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추리의 쾌감 등을 떠올릴 것이다. 추리 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나 형사의 추리를 따라가보면서, 나도 함께 누가 범인인지 추리해보는 그런 재미가 있는 소설이 추리 소설이다. 정말 많은 마니아층이 있는 문학 장르이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사 크리스티의 ”푸아로“ 등 수많은 사랑 받는 캐릭터들이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기도 좋은 장르이기 때문에, 스크린이나 TV로도 자주 소비된다.
그리고, 일본 추리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탄탄한 구성, 스토리의 전개감, 상상력, 그리고 예상할 수 없는 반전까지 추리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정말 그야말로 글을 너무나 잘 쓰는 타고난 소설가이다. 지금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을 쓰는 등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매 작품마다 퀄리티 있는 작품을 내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비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등의 소설도 흥행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단연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은 <용의자 x의 헌신>이다. 이 책은 책으로도 많이 사랑받았고, 한중일 모두에서 영화화되었고, 뮤지컬화 되기도 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이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제3탄이라서, 큰 줄기는 “탐정 갈릴레오”의 추리로 이어진다. 책의 극초반에 살인 현장과 범인을 보여주면서 시작하고도 후반에 상당한 반전을 주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소설의 메인 인물은 3명이다.
우선, “탐정 갈릴레오”라고 불리는 이 소설의 탐정은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이다. 천재 물리학자이자, 완벽하게 알리바이가 설계된 한 사건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 이시가미 데츠야와는 대학교 동기로, 서로 자신들의 비상한 두뇌를 이해하며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이 책의 주인공인 이시가미 데츠야가 나온다. 천재 수학자이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알게 되어 그 사건을 은폐하고 알리바이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설계를 파헤치려는 대학교 동기 유가와 마나부와 두뇌 대결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하나오카 야스코라는 도시락 가게의 직원이 나온다. 전 남편인 도가시가 계속해서 자신의 딸을 넘보자, 자신의 딸과 함께 그를 살해하고, 이시가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은폐하고, 그 뒤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게 된다.
(초반에는 위와 같은 수학교사와 도시락 가게 직원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최근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과 유사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영향을 받은 것일까..?)
추리 소설 특성 상, 지나친 줄거리 설명은 스포일러가 되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해치기 때문에 책 뒤 표지에 있는 줄거리 설명을 첨부하겠다.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음만을 생각하던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는 옆집에 이사 온 하나오카 야스코의 아름다움에 반해 남 몰래 그녀를 흠모하게 되면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어느 날 야스코의 전남편 도가시가 돈을 갈취할 목적으로 그녀를 찾아오고, 폭력을 휘두르던 그를 야스코와 야스코의 딸 미사토가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시가미가 모녀를 돕겠다며 나서고, 그는 그녀들을 위한 철벽의 알리바이를 구상하며 완전 범죄를 꾀한다. 공교롭게도 이시가미의 옛 친구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일명 탐정 갈릴레오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피 말리는 두뇌 싸움에 들어간다. 이시가미를 추적하던 유가와는 어느 순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이시가미의 트릭을 눈치채고 경악하는 한편 친구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고민에 빠지게 된다.
추리 소설인데, 야스코 모녀의 살인을 초반에 보여주고 시작하며,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경찰의 수사를 보여줌으로써 추리소설로서의 긴장감이 덜할 것 같아 보이지만, 독자의 추리에 대한 흥미와 반전에 대한 즐거움 역시 충분하고, “유가와와 이시가미라는 두 천재의 알리바이를 둔 두뇌 대결“, ”이시가미라는 한 인간의 사랑과 헌신“이라는 두 가지에 독자들이 주목하게 만든다.
전자에 주목해보자면, 작가가 소설 전반에 흩뿌려놓은 조그마한 소재들이 모두 일종의 복선이 되어 후반에 반전의 요소들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속도감 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고, 도대체 이런 점들이 후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 상상해보며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둘 간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오는 서스펜스적 요소 역시, 너무나 몰입감이 넘치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
후자는 어떤 이성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헌신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추리 소설에서 자주 보기 힘든 극한의 낭만과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낸다. 그리고, 이 사랑은 너무나 눈물겨운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랑은 에로스, 플라토닉, 아가페, 루두스, 스토르지, 마니아, 프라그마의 7가지로 분류되곤 한다.
에로스는 육체적이고 열정적인 사랑,
플라토닉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인 사랑,
아가페는 절대적인 사랑(보통 종교적 의미),
루두스는 연인보다는 친구 같은 사랑,
스토르지는 친구 간에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르익는 사랑,
마니아는 강한 집착 및 소유욕의 사랑,
프라그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가슴보다는 머리로 사랑하는 사랑을 각각 의미한다.
우리는 용의자 x의 사랑과 헌신을 어떤 사랑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에로스로, 어떤 사람은 아가페로, 어떤 사람은 마니아로 분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으로 보고 싶다. 이 사랑은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 존재이자, 곧 삶의 의미가 되어버린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마치 종교와 같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이토록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토록 많이 희생할 수 있을까. 그 한없이 순수한 사랑이 현실에 있을까.
이 책은 446페이지의 장편 소설이다. 정말 빨리 읽히고 전개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나는 쉬지 않고 몇 시간 정도만에 쉬지 않고 다 읽었다. 절절하고 처절한 사랑을 추리 소설로 그려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과 상상력,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