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기를 더디 하라...

속도를 늦추니...

by 정은영

일을 끝마치고 새벽 3시 반이 다되어서야 지치고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집에 들어오는 남편님을 맞이하였다. 그런 남편을 위해 평소 해보지 못했던 오징어순대를 준비해 뒀다. 식은 오징어순대를 데워 나름 가지런히 잘라 기다란 사각 접시 위에 세팅하고, 고추냉이 간장소스를 곁들여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자.. 이제 남편님이 먹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 분이 젓가락을 들어 한 개를 공략해 집어 들고는 바로 입속으로 쑤셔놓는다. 남편의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다. 순간 남편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미간이 심하게 주름이 그어졌다. "안에 두부랑 고기는 없고 잡채만 가득 있는 게 무슨 오징어순대냐? 다음부턴 이거 하지 마."

갑자기 서럽고, 욱하는 감정이 저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감정들을 겨우 참고, "그러네.. 고기랑 두부가 별로 없네? 망했다. " 하고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꼭꼭 가두웠던 그 못된 감정이 봉인해제되기 전에 말이다. 칼 끝이 내 심장을 정확히 찌르듯 날카로움에 견디지 못한 고통이 밀려왔다. 두부랑 고기가 부족한 관계로 맛이 없었던 모양인데, 돌아오는 건 그 칭찬 대신 핀잔이었다. 긴 들숨과 날숨을 이어가며, 홀로 안방에서 생각에 잠겼다. "화내기를 더디 하라."는 성경 조언을 떠올렸다.


'화내기를 더디 하라는 말은 무엇일까? 박문호 박사님의 '인간관계를 망치지 않는 법'이란 강의 중에 '관계는 본질이고, 존재는 그림자다.'란 말이 생각났다.

나와 남편과의 존재라는 그림자와 관계라는 본질에서 난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잠시 생각이란 것을 했다.

관계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데, 시간과 공간에서 중요한 건 속도라 했다. 속도가 변화하면 관계도 변화한다고...

남편의 서운한 말 때문에 내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나는 어느덧 불쾌한 감정이란 녀석을 떨치고 남편이 왜 이러는지 그 본질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붉은 용암은 점점 식어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생각의 전환'...

화를 내는 속도를 늦추니 나와 남편 사이를 방해하는 감정 소모라는 것을 건너뛰게 되었다. '화를 내기를 더디 하라'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나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


'속도를 늦추니, 관계가 변화하는구나.'

화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그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렇게 음식타박하는 남편이지만 시댁 식구들과의 모임에서 서방님과 경쟁하듯 나의 음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는 남편이기에 난 이미 용서했다.

신랑도 내 상태를 눈치챘던지 조용히 빈접시를 부엌으로 나르고 있었다. 제발 갱년기야? 너무 일찍 오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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