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같은 엄마

시린 마음

by 정은영

"나 아직 괜찮어. 치매 걸릴 정도로 바보 멍충이 아니야." 뽀얀 피부사이로 깊어진 눈주름이 파르르 떨리고 입꼬리가 축 쳐진 채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그저 난 한숨이 베인 채로 엄마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니, 아빠까지 나셔서 엄마는 절대 바보가 아니라며, 왜 멀쩡한 엄마를 병신으로 만드냐고 격노하신다. 5등급...장기요양인정 등급이 나와서 우리 5남매는 비상이 걸린 것이다. 점점 말씀이 어눌하시고, 느려지며, 단기 기억 소실이 진행 중인 엄마를 근처 종합 병원 신경과에서 약을 타 가지고 와서 엄마의 상태를 아빠와 상의하던 와중에 끝내 아빠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괴로워하셨다. 처음으로 아빠에게 난 크게 화를 냈다. 아빠도 역시 난생처음 나를 향해 큰 소리를 내셨다. 너무 속이 상한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큰 숨을 들이마시며 밖으로 나와버렸다. 두 분 다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셨지만 딸자식들의 마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복약을 정확하게 하실 수 있도록 안내를 해드렸고, 인지자극 활동 지원을 하여 엄마의 인지 향상 및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맞이하였다.


벌써 다섯 달이 지났나 보다. 다섯 달 사이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지 말라고 해라. 아빠가 불편해하신다. 난 거의 다 나아서 선생님 필요 없다. 등등 엄마는 아빠 핑계를 대고 아빠는 엄마가 누가 오는 거 싫어하신다며 내일부터 그 여자 오지 말라고 해라.. 등등 두 분이 돌아가면서 내 맘을 아프게 하셨다. 다섯 달 사이 내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물론 아빠의 입장에서야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해하지만 왜 이렇게 아빠는 아빠밖에 모를까 하며 아빠를 원망도 해보았다.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방문요양 센터에서 복지사로 일하면서 엄마를 돌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일이 보람되고 즐겁지만 한 두 분 먼 길을 보낼 때마다 곧 내 부모에게 닥친다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은영아! 그 여자 다시 오라고 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간 말동무가 생겨서 많이 좋아진 거 같고, 있다가 없으니까. 엄마가 우울증 걸릴 거 같해." 아빠의 무겁고 건조한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왔다.

아빠는 이 상황을 서서히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 달 후 또다시 아빠로부터 "그 여자 내일부터 오지 말라고 해라. 엄마는 이제 다 나은 것 같은데. 농번기라 우리가 얼마나 바쁘냐. 그렇다고 그 여자보고 일을 도와달라 할 수 없잖니"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이제는 감정적으로 아빠에게 대응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끝까지 아빠의 말씀을 듣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고, 바로 친정 집으로 향했다. 엄마의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행동 순서를 익히는 일, 인지자극 향상과 말벗 및 정서지지가 중요한데, 그렇다고 아빠가 엄마와 말벗 친구가 되어주는 것 같지 않은데, 도대제 아빠는 왜 이럴까 싶었다. 아침에 식사하시고 바로 나가시고 엄마는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친정 집에 다다랐다.


엄마에게 필요한 인지자극 월간 프로그램 계획표와 워크북, 진행에 필요한 스케치북, 가위, 풀, 색종이, 색연필, 사인펜.. 바리바리 싸들고,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선 이 시각엔 엄마와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마을회관에 나들이 나왔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는 게 싫다던 엄마는 선생님과 커피를 마시며 아주 화기애애하셨다.

"엄마! 이젠 몸도 안 아프시니 내가 내준 숙제와 공부를 선생님과 함께 하셔야 해. 공부했는지 안 했는지 매일매일 확인할 거야." " 난 공부 싫어. 국어, 수학은 너무 싫었는데. 또 공부하라고... 아이고. 하하하" 엄마의 귀여운 투정과 함께 내 심란한 마음도 어느덧 눈 녹듯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언니? 엄마랑 통화했어?" "아니? 왜" 막내 동생이 엄마랑 대화하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이번 주까지만 오기로 했다기에 확인차 동생이 전화한 것이다. "아니 그런 말 한적 없어." "그렇지? 엄마가 또 딴소리를 해서... 근데 엄마랑 오늘 길게 대화를 해보니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시는 거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 물론 중간중간 속 터지는 말씀을 하시긴 하는데. 지금 보니까 아빠가 문제던데? 아빠가 좀 이상해. 판단력이 많이 떨어진 거 같아. 지난번에 인지검사를 하셨는데 치매 위험으로 나왔대." 순간 난 눈앞이 캄캄했고, 그동안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도 내고, 원망도 했는데.. 어쩌다가 두 분이..

초기 증상인 줄 모르고...

지금껏 자식들에게 아프다 소릴 한 번도 안 하신 분인데, 아빠에게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시리고 아파왔다.

'아.. 은영아! 정신 차리자... '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여 아프지 않은 게 아닌데..
감춘다고 숨겨질까?
아버지 당신은 와이프가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새벽에 엄마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셨는데
정작 당신은 ...
소리 없이 병들고 계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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