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FIRE 부부의 대구생활 방랑기
한불 커플의 호주에서 만남
1년을 등록하고 온 영어연수 학교에서의 생활은 5개월이 지나자 너무 지겨워졌다.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어 했던 나의 소망(?)으로 결정된 케언즈라는 호주 동북쪽의 작은 해변도시는 처음에는 너무 낭만적이었지만 3~4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심심한 곳이었다. 특히나 서울에서 일하다 온 나 같은 사람에겐 스노클링, 낚시 등의 수업 후 액티비티도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 져서 학교와 상담 후 멜버른에 있는 계열학교로 옮겨가게 되었다.
케언즈에서의 따뜻한 날씨와 낭만적인 풍경이 그새 익숙해져서인지 멜버른의 첫인상은 '차다'였다. 한국으로 치면 초봄인 9월의 날씨는 나의 살을 떨리게 했고 돌로 지어진 것 같은 오래된 기숙사는 한기에 휩싸여 있었다. 멜버른으로 떠나기 전 케언즈 학교 직원이 연결해 준 이 여학생 기숙사는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고 외롭게 했었고 어린 현지 여학생들은 나를 유령인간 취급을 했다. 심지어는 내가 넣어놓은 빨랫감을 건조기에서 젖은 상태로 빼서 자기들의 옷을 건조하기까지 하는 등 정말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첫 며칠의 기숙사 생활에 지친 내가 학교 시작일이 되었을 땐 오히려 반가웠다. 영어연수 학생들끼리는 서로의 실수투성이 영어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되어있었기에 최소한 대화는 할 수 있어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올라갈 레벨이 없는 영어수업은 심심함의 연속이었다. 케언즈에서는 따뜻한 심심함이었다면 멜버른은 추운 심심함이었다. 한 달 정도 영어 수업 후 가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마케팅 6개월 단기과정으로의 이동을 권유받았고 10월 4번째 Term으로 마케팅 수업을 시작하였다.
보통 봄과 가을에 새 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들과는 다르게 내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는 1년에 4번 입학이 가능했고 나와 같이 입학한 신입생은 나를 포함한 3명뿐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17살 남학생, 20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온 남학생 그리고 한국에서 대졸 후 직장생활 2년 6개월을 해서 돈을 모아 영어공부를 위해 온 나...
입학식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온 어린 남학생은 거의 보기 힘들었고 어쩔 수 없이 그 프랑스인이랑 나는 항상 같은 수업을 듣기 위해 같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같이 다녔던 것이 아니라 수업 전 일찍 도착하던 우리는 교실에서 같이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을 기다렸고 같은 과목을 수강하기에 다음 수업으로 이동은 같이 했을 뿐이다.
우리는 비즈니스 스쿨이라는 모토 아래 정장을 입고 수업을 듣게 되어 있었고 어두운 회색정장을 입고 나타난 프랑스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차다'였다. 솔직히 국적을 말하기 전 그를 보고 난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가벼운 인사정도만 하면서 같이 다니던 우리는 한 과목의 첫 수업에 일찍 도착해 둘이서만 수업시작을 기다리게 되었다. 왜 선생님이랑 다른 학생들이 교실로 오지 않는지 궁금해하다가 같이 담당교수님을 찾아가 물었더니 'Oops, 수업시간을 너희 둘에겐 잘못 알려줬네(이번학기 새 학생은 우리 둘 뿐이니... 어차피 인도네시아에서 온 남학생은 학교에 오질 않고 ㅠㅠㅠ)'라고 하며 미안해했다.
할 수 없이 우리 둘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그 프랑스인 남학생은 맥도널드에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제안했고 그날이 우리가 아주 조금 가까워진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