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너 어쩌려고 그러니?
"설날 전날에 온다는 말이지? 알겠어. 어떻게, 회사는 전날 좀 빨리 끝내준대?"
"아빠 사실, 나 퇴사했어."
".....어? 언제?"
"사실 작년 10월에...."
".....(침묵)..., 너 이제 서른도 넘었잖아, 어쩌려고?"
사실 퇴사는 10월에 했는데 이번 설날을 급박하게 앞두고 퇴사를 알렸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는 척, 퇴근하고 연락한 척, 거짓말할 순 없었다. 어릴 적부터 체벌을 강행하면서까지 우리 아빠가 강조한 한 가지가 "거짓말은 절대 안 돼. 솔직하게 살아야 돼." 였기 때문에.
우리 아빠는 1998년부터 택시를 몰았다. 벌써 30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 나는, 1년 반을 주기로 벌써 4번째 퇴사를 질렀다. 우리 아빠 입장에선 도대체 퇴사가 뉘 집개 이름인가 싶을 거다.
이번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남들보다 퇴사를 잦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엔 나한테서 이유를 찾았었다.
'금방 질려하나?' 공포 혹은 두려움의 생각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나 보다.' 하는 보다 긍정적인 생각까지. 그러다 보니 사실 이건 내 탓(?)은 아니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삶이 끊임없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민함의 축복을 받은 나는, 그 삶의 흐름을 남들보다 더 민감하고 세밀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흐름에 따라서 방향을 계속 바꿨다. 그래서 죽음을 만났던 병원시절부터 갑자기 화면설계도를 피그마로 공부하고, 그 이후 매트 위에서 내 발가락을 바라보기까지. 내가 뭘 잘하는지, 그리고 세상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계속 관찰했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까지 왔구나.
다행히, 예전보다는 퇴사가 죄(?)나 흠(?)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그건 확실하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고, 잘못된 삶은 없기에. 그저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80억 중에 한 가지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