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잃어버리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사고의 데페이즈망

by 김재성


사람의 정서라는 것이,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 대단히 즉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고 퇴근은 꽤나 늦게 하는 어떤 긴 하루의 시작이었다. 점점 짙어지는 단풍처럼 가을 아침 공기의 쌀쌀함도 점차 짙어지는 날이어서 그런지 머리가 차가웠나보다.



평소와 달리 아내보다 일찍 출근한 그 날은 욕실에서 출근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충분할 만큼의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선 것이 아쉬웠다. 그렇게 오전의 차가운 공기가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아내와의 메신저 대화창을 보고 있었는데, 별안간 아내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문자가 왔다.



"지갑이 안 보여. 잃어버렸나봐."



보통 집에서 아내가 무언가 없어졌다고 할 때, 내가 찾으면 5분 이내에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평소에 두지 않는 곳에 놔둬서 잠깐 못찾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마치 어렸을 적 내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던 것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꼭 바로 나오는 것처럼.



"정말 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제 길에서 흘린 것 같아. 어떡해."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비록 문자 메시지였지만 아내의 울상이 된 모습이 화면에 오버랩되었다. 우선 아내도 출근을 해야 했기에 되는대로 카드를 챙겨서 나섰다고 했다. 아내는 출근길에도 여전히 불안해했다. 아끼던 지갑인데, 어떡하냐며.



그도 그럴 것이 아내의 지갑은 아내가 굉장히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다. 아내의 지갑은 지난 일본 여행에서 내가 사준 것이었다. 유명 브랜드의 다소 고가의 지갑이었고 아내가 좋아하는 색감에 이니셜까지 새겨서 선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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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것은 파란색에 크림색이었는데, 이제 같은 색상을 구할 수 없어서 아내는 더욱 상심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답답함이나 짜증같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문득 얼마전에 제주도에 다녀와서 내가 지갑을 잃어버릴 뻔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3년 전에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던 일, 7년전 버스에서 지갑을 흘리고 내려서 종점까지 찾아갔던 일.



또한 직장 내 분실물 함에 가장 많이 있는 것이 지갑이라는 것과, 일주일에 수차례 지갑이 분실물로 들어오는 것, 또 3년전에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지갑을 일어버렸을 당시 지하철 내 역무원께 부탁드려 분실물을 확인해보니 지갑이 가장 많았던 것을 보고 당황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당장 지갑을 잃어버려 너무나 속상해하고 상심해있는데, 문득 나는 이전까지 해본 적 없던 생각이 하나 떠올라서 아내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지갑은 어쩌면 잃어버리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서 나는 아내가 겪고 있는 '큰 일'이 사실은 꽤나 보편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인류가 역사상 가장 많이 잃어버린 물건은 지갑일거야."



그러고 보면 나는 예전에 썼던 지갑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지갑을 갖게 된 것은 모두 이전에 사용하던 지갑이 분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갑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손에서 원치 않는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며, 지갑이 없어지는 일은 정해져 있던 끝에 도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아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너무나 상심해 있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었다. 이건 아내에게만 잃어난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아니었다. 인류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내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고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새것으로 사주어야겠다. 작은 것은 아내가 잃어버릴 수 있으니 지갑보다는 커다란 가방으로.'



사건 선후관계의 도치, 인과관계의 역이랄까 아니면 사고의 데페이즈망이라고도 부를 만한 생각이 지나가자 감정적인 동요나 정서적인 반응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아내를 진정시키고 상심한 마음을 달래주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쓸 지갑이 그거 하나뿐이었겠어? 그냥 지나가는 물건 중 하나였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당신이 선물해준건데... 너무 예뻐서 항상 볼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았던 거란 말이야..."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주었다니, 그러면 됐어."



13시간의 긴 근무를 마치고서 퇴근길에 올랐을 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제서야 아내는 무너져 내리는 것같은 마음을 추스르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안은 두더지가 밭을 다 파헤친듯 뒤집어져 있었다. 내가 집에 도착한 늦은 시간까지 한참이나 포기하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뒤졌을 아내가 가여웠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가구의 틈을 살펴보다가 문득 아내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나 혼자 아내에 대한 호감만 가졌을 뿐, 연애를 하기 전인 3년 전 일이었다. 실내에서 아내는 손에 있던 에어팟을 떨어뜨렸는데, 에어팟 하나는 아내의 발밑에 떨어져 아내가 금방 찾았지만, 하나는 멀찍이 굴러 책상 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 탓에 아내는 발밑에 떨어진 에어팟을 줍느라 책상에 굴러 들어간 나머지 에어팟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짓궂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당시의 아내에게 호감을 얻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 에어팟이 떨어져서 없어졌어요."



한참을 에어팟을 찾던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울상을 지으며 도움을 구했다. 모른척하며 도움 요청을 기다리던 나는 능청스럽고 태연하게 말했다.



"정말요? 흠... 이렇게 갑자기 뭔가 없어졌을 땐, 전혀 생각지도 못할 곳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고서 나는 꽤나 떨어져 있는, 에어팟이 들어간 책상 밑에서 당연하게도 에어팟을 찾아 내밀었다.



"봐요. 진짜죠?"



당시의 아내는 모르겠지만, 내가 에어팟을 건네자 환하게 밝아지는 얼굴이 참 예뻤다.



잠깐의 옛날 생각을 한 나는 이미 뒤집어진 집을 보고 생각했다.



'그래, 이럴 땐 전혀 생각 못할 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



나는 정말 없을만한 곳이 어딘가 생각하다가 안방의 붙박이장을 열었다. 당연히 눈앞의 선반에는 없었지만, 내가 붙박이장을 연 것은 선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내가 이미 다 헤집어놓고 찾아보려 생각할 수 없을 만한 곳. 내가 생각한 곳은 바로 붙박이장 문 틈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리도 못내고 끼어있는 파란색 지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나."



나는 아내를 불렀다.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아내에게 아내가 그토록 찾던 지갑을 내밀었다.



"봐, 이럴 땐 전혀 생각하지 못할 곳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러자 3년 전의 그때보다 더욱 밝은 얼굴로 아내가 나에게 폴짝 안겼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아내를 달래주었던 나에게 스스로 감사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인류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지갑이 언젠가 잃어버리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면 당신이 오늘 잃어버렸어도 그것은 별일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 간만에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서적인 반응과 충동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뒤집어서 보는 사고의 전환 뒤에 사람은 놀랍게도 침착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의 데페이즈망이라 부를 만한 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일어난 것이다.



아내는 지갑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저 소중한 물건이 언제 어느 때 아내에게서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 소중함은 물건이 아니라 아내에게 있다는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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