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세 친구의, 오래된 추억.
*2015년 카페에 올렸던 글.
지난 1월 5일, 2015년 첫 호도협 트레킹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생애 첫 해외여행을 오신
40대 중반의 주부님들(세 친구)과 함께.
(생애 첫 해외여행을 이곳 리장, 옥호촌 그리고 호도협으로 잡으신 이분들... 대단한 안목이시다.^^ㅎ!)
리장을 출발하여 호도협 교두를 지나 일출소우까지는 차로 이동하였고, 이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현재,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건설 중이어서, 일출소우에서 시작되는 처음 구간은 기존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이게 좀 힘들다. 몸도 안 풀린 상태에서 급경사를 올라야 하니까.
우리 주부님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무척 힘들어하셨다.
한 분은 시작한 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아서... 'Where is my 말?'을 말없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다른 두 분이 억지로 천천히... 모시며 끌고 갔기에... 일단 트레킹은 계속되었다.
일출소우에서 나시객잔으로 가는 길, 처음 산을 넘고 나니... 조금 수월했다.
그리고 이곳 호도협을 오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하바설산의 모퉁이를 돌며 옥룡설산의 끝자락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탄식의 소리만큼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3D 카메라가 아니면 표현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 안에서 이 시간과 공간에 왜 내가 있는지, 어찌 있을 수 있는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헉헉대는 숨소리 사이로 튀어나오는 주부님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직장 이야기,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다른 주부들의 소소한 가정사까지.
아이도 없고, 남편도 아니 아내도 없고, 직장도 없고,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다른 주부들도 없는 따슝에게는 모두 외계의 언어였지만... 그들 이야기의 리듬감이 참 좋더라~!
나시객잔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밥상을 앞에 두고 불안한 식사를 했던, 말없이 말을 찾던 한 분은... 결국 나시객잔에서 말을 찾았다. 그리고 말을 빌려 말에 오른 후,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해맑은 표정으로. ^^*
나시객잔에서 28밴드 정상까지 가는 길,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힘들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 '내가 올라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정보 없이 처음 걷는 길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을 뿐, 사실 걷다 보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다 와 있다. 누구나... 살아왔던 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을 타신 분도, 나머지 두 분도 모두 진지하게 28밴드 정상을 향해 걸었다.
말없이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며 걸었다. 스물여덟 번 꺾인 고갯길을 오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내가 몇 번째 고갯길을 꺾어 돌아왔는지는 금세 잊힌다. 걷다 보면 고개는 보이지 않고 내 발아래의 길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주부님들은 28밴드의 정상에 다 올라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을 마시고 준비한 간식을 먹는 주부들은 어느덧 소녀들로 변한 것 같았다. 남편도 아이도 주변의 일도 상관없이 온전히 자신들만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잠시 돌아간 것처럼. 그들이 말하는 외계의 언어에 귀 기울여 해석해 보니.. 옆의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는 결국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와 다짐의 말이더라.
28밴드 정상에서 대나무 숲길을 지나 차마객잔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그동안 올라온 길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내리막길과 평지는 지루할 정도로 길다. 그래도 수백 미터 아래서 들려오는 호도협 계곡의 물소리는 지루함을 달래준다. 말에서 내리신 분은 말과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만큼의 속도로, 혼자 멀리 앞서 가셨다. 다른 두 분도 간격을 두고 걸었다. 모두들 뭔가를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며 걷는 모습이었고, 트레킹 시작부터 오른편에 계속 펼쳐져 있었던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인 광경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까지 가는 길은 호도협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다.
길도 경치도 최고다.
옥룡설산의 마지막 능선과 함께 하바설산의 기슭을 걷는 것이다. 샹그릴라로 향하던 옛 차마고도의 길을.
걸어가야 할 앞쪽의 산기슭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다. 보이지 않는 계곡 안쪽까지 거쳐서 돌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와 풀, 돌과 바람을 지나며 걸었다. 다리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지만, 우리 주부님들 표정은 곗돈을 탄 것처럼 밝다. 두 분은 이번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다. 이곳을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간 한 친구의 권유로 이곳을 오게 되었다. 일본의 온천보다, 동남아의 해변보다, 유럽의 이국적 풍경보다 이곳이 얼마나 더 좋을지... 어떤 정보도 확신도 없었다. 그저 먼저 다녀온 친구가 함께 가서 같이 걸어 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걷기 위하여 여권을 만들었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가족들의 염려와 응원을 뒤로 이곳까지 왔다.
... 그렇게 와서 걸은 이 길이... 정말로 후회스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세 친구의 얼굴이 서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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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옥호촌 달빛나비객잔을 출발하여 11시에 일출소우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오후 6시 30분 중도객잔에 도착하며 끝났다. 잠깐 동안의 휴식을 포함하여 총 7시간 반을 걸었다. 중도객잔의 전망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걷더라도 꼭 올만한 곳이다. 그 전망대에 올라 옥룡설산 쪽을 바라보는 순간, 걸으며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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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 저녁식사로 준비된 닭백숙과 소고기 볶음면, 애플파이를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드시며 세 친구는 지나온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걸어온 길에 대해 말했지만 들리는 것은 살아온 길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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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내부에는 중도객잔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있다. 세 친구는 그 흔적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다녀간 시간과 이름들을. 세 친구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 새겼을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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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건 아픈 설렘이라더라.
돌이킬 수 없고, 잊히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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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의 호도협 트레킹.
돌이킬 수 없다고 아파하시지 말고, 잊히지 않으니 늘 설레시길.
그래도 정 아플 때는... 어디서든 다시 함께 걸으시길.
걷다가 힘들면...
말도 함 타시면서~! ^^*
* 이 글은 2015년 겨울 호도협을 다녀와서 올린 글이며, 따슝은 이후로 차막객잔을 주로 이용합니다. 중도객잔 확장 공사 이후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고, 차마객잔 사장님 부부가 늘 주시는, 집에서 직접 만든 옥수수술이 저를 붙잡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더 인정 많은 차마객잔이 호도협의 유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