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씹하판’
남어이 할머니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얼마라고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남어이는 사탕수수 주스인데, 상반기에 그 할머니댁에서 남어이만 사먹어서 남어이 할머니라 부르고 있다. 얼마 전 숫자교육을 받은 나는 십만킵 세장과 오만킵 한장을 내면서 이제는 제가 숫자를 좀 알죠! 게다가 딱 맞춰 드립니다! 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할머니는 호탕하게 하하핫! 웃으시며 내 손의 오만킵짜리만 빼가시더니, 만킵짜리 한장, 오천킵짜리 한 장 해서 만오천킵을 거슬러주셨다.
라오스에서는 ‘판’은 천 단위고, 다른 숫자는 약간 한국어 숫자와 중국 숫자 발음과 비스므리하다.
'쌈씹하'는 삼십오(35)다.
'쌈씹하판'은 삼십오, 천으로 삼만오천킵이다. 한국돈으로는 약 삼천오백원 정도.
아이스크림 7개 값으로 나는 한국돈으로 삼만오천원을 내려고 한 셈이다.
5월에도 아직은 숫자와 환율 계산이 안되어서 남어이 세 잔을 사면서 이천킵을 내고는 잔돈을 달라고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때도 웃으시면서 그게 아니라고 하신 것 같았는데, 내가 못알아듣자 앞치마의 지폐 꾸러미에서 내가 내야하는 돈을 보여주시면서 내 앞에서 팔랑거리셨다.
남어이는 한 잔에 오천킵이었다. 한국돈으로 약 오백원. 나는 한국돈 이백원을 내놓고 잔돈을 달라고 우두커니 서 있던거였다.
수도인 비엔티안이나 대도시인 팍세만 나가도 종종 외국인이 오기 때문에 흥정하려고 계산기로 숫자를 못알아들으면 서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다보니 거기에서는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받을 때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반경은 우리 말고는 아직까지 외국인이 거의 없었고, 어쩌다 한번 오는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우르르 왔다가 한 번에 우르르 가서 실질적으로 그 분들이 상대하는 손님은 그 동네 주민들이다 보니, 영어를 굳이 해야 하는 이유도 없고, 계산기를 두드릴만큼 흥정을 할 필요도 없으니, 이제나 저제나, 우리는 이 곳에서 사실상 문맹이다.
나름 1부터 10까지는 익혔다고 해고, 뒷자리를 모르면 10배 웃돈을 주거나 10배 적은 돈을 주고 서로 당황해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도 아직은 외지인에게 정답고 친절해서 그들에게 상처를 줄 일도 없고, 사기를 쳐서 외지인을 속상해하는 일 없이 정직하게 계산을 해 주고 돌려주지만, 예전에 갔던 배트남의 몇 몇 드라이버들처럼, 한번 보고 안볼 것이라는 생각에 장난치는 것처럼 변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소소하게 적당히 벌어서 돈의 맛을 크게 느끼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필요성을 못느낀다면, 온화한 표정 그 대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사탕수수 내려주시는 남어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