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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20. 2023

길 위의 소

창문 너머로 누워서 풀 뜯는 소가 부럽다


누군가는 한 주 내내 작업하던 파일이 날아가서 밤을 새우고, 누구는 부디 문제없게 넘어가주길 바라며 결재를 기다리고, 무엇 하나 여유는 없는 공간 속에서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는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 따뜻한 햇살 아래 추수가 끝난 밭에 고동색 소 한 마리가 느긋하게 누워서 귀를 팔랑거리고 있다.

축사에 갇혀있는 것도 아니고 소 주인이 적당히 풀어놓으면 이 집 저 집 삐죽 솟은 벼의 밑동을 뽑아먹거나 새로 나는 초록잎을 따먹거나 그도 심심하면 여기저기 뛰지도 않고 길을 막으면서 제갈길 간다.

누구 하나 바쁘지도 않고, 차가 달려와도 황급하게 비키지도 않는다. 그저 마주 보고 오다가 대각선 방향으로 슬쩍 비껴나가기 할 뿐.

무서울 것도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고, 차나 오토바이는 경계대상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가도 경계는커녕 양배추라도 던져주면 갑자기 돌진을 하니,

속 편하고 좋겠구먼.

물론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하겠지만, 서로의 믿음으로 내가 키우는 소는 누가 훔쳐가지 않고, 풀어놓은 소는 저녁 즈음이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회귀본능에 소 주인은 큰 걱정이 없을 것이다.

소의 마지막은 사실상 정해져 있겠지만, 그전까지 자기 마음 편하다면야. 자유롭게 거닐며 방해받는 것 없이 다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매일이 똑같겠지만 두려울 것 하나 없고 내일이 오는 것도 버겁지 않겠지.

조금 더 맛있는 풀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정도.

거침없이 길을 건너는 버팔로
퇴근길에만 볼 수 있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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