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아쉬움마저도 잊힌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고요한 결심, 이화열, 앤의서재, 2025>의 부제는 이 책의 내용을 말한다. '내 삶의 언어로 존엄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라고 붙어있다.
이 책의 지은이 이화열 님은 파리에 정착한 에세이스트다. 이 책은 작가님의 시어머니인 아를레트의 조력사에 대한 내용이 소설처럼 펼쳐져 있다. 죽음과 존재라는 주제가 책을 감싸고 있다.
프랑스에서 30년이 넘도록 생활하며 우리말보다는 불어를 사용하며 살아온 작가의 글이지만 마치 한국어의 품격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고 아름답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을 떠나 하와이에 정착해서 살면서도 가장 일본적인 느낌의 글을 쓰는 것처럼.
아마도 글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작가만의 삶의 통찰이 문장마다 실려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우아함이란 삶에 대한 맹목성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구차하거나 숭고하거나,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47쪽
인간을 돌보는 일은 때때로 자신을 마주 보게 만든다. 그 안에는 오래된 실망과 감정의 응어리, 불편한 책임감이 겹친다. 반려동물은 다르다. 판단하지 않고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은 조건의 산물만은 아니다. 겪은 방식이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다. 반려견보다 더 선명하게 자신을 비추는 건, 결국 타인과의 관계다. 49쪽
조언이나 간섭이 인간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의 선택이 만든 경험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세월은 그 선택의 침전물을, 비교적 공정한 방식으로 되돌려준다. 50쪽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그 결정을 누가 하느냐보다 어떻게 평온하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그림자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을 맞이하듯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을 빌리자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죽음의 가시에서 독을 빼는 일'과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 신의 뜻에 순응하든, 자기 결정을 통해 이르든. 문제는 어떤 선택이 옳은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이다. 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자기 삶의 언어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83쪽
그리고 이 문장이 마음에 닿았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삶을 밀도 있게 만들지만, 잊을 수 있는 능력, 망각할 수 있는 능력,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인지도 모른다. 125쪽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를 잃는 것은 사회적인 죽음이디. 자신의 몸과 이별을 하는 객관적인 개념이 완전한 죽음의 시작이며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애도에 대한 구체적인 심정은 구구절절하게 등장하지는 않는다. 서로 간에 좋은 추억이 남아있고 꿈에서 또 만나면서 몸의 소멸을 서서히 시간 속으로 녹여 나가는 매일의 소소한 일상만이 잔잔하다.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친정 부모와 완전하게 다른, 어쩌면 작가와 조금 더 근거리였던 90대 시어머니의 죽음은 매우 철학적이다. 그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 작가의 심정에 빠져들었다.
한국 며느리와 프랑스 시어머니 사이의 좋았던 모든 삶의 순간은 작가의 문장으로 살아있다. 기억을 쓸 때는 그 주변의 문장도 봄빛 생명력을 되찾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가는 모든 것은 온기가 없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감싸는 모든 것에는 생명의 빛이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과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갖는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다가 소멸하는 이치는 단순한 진리처럼 보여도 자신의 문제라면 다를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날마다 죽을 것을 생각하며 산다면 너무 슬플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 곁에 있음을 잊지 않고 삶을 사는 이는 돌아봄 없이 오늘을 후회 없이 정성껏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움과 아쉬움마저도 잊힌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잊게 되면 그저 잊어가고, 결국에는 잊혔으며 그마저도 아쉬워하지 않으며 존재했던 생명의 존엄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