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교사'물을 빼고 싶어

하얀 도화지가 되고 싶은 마음

by 해봄

결국 출판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최근 한 달간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몸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남은 '교사'의 문화, 분위기,

일명 '교사 물'을 몽땅 빼버리고 싶어졌다.

나는 사실 교직을 아끼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직 나만 생각해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교직에 남은 애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단체에서 주관하는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많은 인원이 공저자로 함께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 방향도, 아무런 가이드나 연수도 없었다.

모두가 책을 내보는 게, 심지어는 글을 써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 아이디어를 내고 사례를 공유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아주 신선한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여름방학이 되었는데 다들 출판 프로젝트에 대한 의지가 시들어갔다.

나의 경우는, 이 기획에 의문을 느꼈다.

그래. 아이디어 좋고 저자들 신선해.
에피소드들도 끊임없이 나와.
그런데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어.




이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출판사 투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주고받고, 미팅을 하고,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계약 조건을 조율하고, 계약을 하기까지.


모두 교사인 우리들,

아무것도 모르고 출판사 컨텍 업무를 맡은

'나와 특정 선생님'에게 집중되었다.

이건 분명 교사의 영역이 아닌, 교육현장을 벗어난 진짜 자본주의 대한민국 사회의 일이었다.


오히려 사업적 영역의 일들이 나에게 주어진 게 좋았다.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난 '경험 제일 주의자'니까..! 출판사업의 영역을 직접 겪고 경험해본다는 게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에세이 작가를 꿈꾸는 나에겐 값진 경험이니까.





그 런 데

아무리 '출판사 소통-저자들에게 전달-다시 출판사 소통'을 해도 도통 방향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많은 선생님들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더 좋은 기획과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숨김없이 모두 활용했는데도...!


매번 부족한 피드백을 받았고,

내가 보아도 진전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계약을 하려면 '확신'을 드려야 하는데, 우리의 기획은 긍정적인 느낌만 있고 '확신'은 드리지 못했다.

출판사 측에서도 점점 지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날,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하며 이 말이 오갔다,

해봄 선생님,
저희 출판사가 주로 교사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고, 대다수가 공저 서적이에요.
보통은 마음 맞는, 생각이 비슷한 선생님들이 모여 아이템을 구상하고 진행하십니다.
.
미팅했을 때 보니 모두 재능 있고 열정 넘쳐서 믿음이 갔는데, 미팅 날 만큼의 시너지만 내주셔도 충분히 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힘드신 것 알지만, 뽑아오셔야 해요.


머릿속을 쿵 울렸다.

"출판사 대표님도 우리 조직 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셨구나. 이번에 제대로 안 하면 계약은 끝이다."





분명 선생님들이 열정적으로 임하시는데도

결과가 매일 똑같은 건,

다수의, 그리고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음에도 숨기고 작업에 참여한 거다.

어느 단체 작업이나 그렇듯이 참여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다들 동상이몽을 하고 있으니 하나의 방향은

나올 수 없을 수밖에.

우리의 작업 부진은 당연하게 일어나는 결과였다.






심지어 실질적으로 작업에 참여한 건 없으면서,

말만 한 선생님들이 오히려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해봄 선생님의 기준에 못 미친다고 해서 부족하다고, 더 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지금까지 제일 일 많이 한 게 누군데, 숟가락만 얹어 놓고 어쩜 이렇게 뻔뻔하지?"

라는 생각과

"어쩜 이렇게 교직사회와, 공무원 문화와 똑같지?"

라는 충격이 함께 왔다.


그분들의 말은 놀랍게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적당히 해야 한다!
열정 가지고 해 봤자 책임만 뒤집어쓴다!
너만 잘났니? 혼자 튀려고 하지 마!

라는 교직사회 및 공무원의 (개선되어야 할) 인식과 문화가 그대로 배어있었다.





소름 돋았다. 우리의 기획은 기존의 교직문화에 대한 적응보다는 의문이 더 큰 기획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교직의 매너리즘'이 싫다고 하면서

나에게 그대로 '교직의 매너리즘'을 요구하는

셈이었다.

이 모순이 너무 싫었고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 비판이,

열심히 임한 선생님들에게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 가만히 있기 싫었다.


내가 하차할 것을 각오하고, 쓴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사실 내 경험 속 사회생활에 비하면 '순한 맛'으로 말했다.


스무 살 때부터 회사에 던져져 밟히고, 찢기고, 짓눌리고, 울며 사회생활을 몸소 배웠고,

그런 나의 시선에서 그분들이 말하는 나에 대한 비판의 내용은, 학교 밖의 세상이 '학교 교실과 똑같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말이었다.





우리의 경쟁자는 작가님들이고,

작가님들이 작품 하나를 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시는데,


"열정이 과하다, 포용력이 부족해서 채찍질만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가망이 없다고 느꼈고

굳이 참여할 가치를 잃었다.

속으로 '이걸 해서 나에게 득 되는 게 없는데 누가 보면 내가 엄청난 이익이라도 얻는 줄 알겠다' 싶었다.




어떤 시선에서 보면 과하고, 다른 시선에서 보면 안일한 현재 태도로 출판을 진행한다는 건,


피땀 눈물로 작품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시는

타 작가님들께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졌다.


나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기에,

특정 선생님들의 주장처럼(대부분의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작가답지 않게 참여해야 하고, 공무원 조직의 우물 안에 갇힌 시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은 교직사회, 공직사회보다 험난하지만 넓고, 다양하고, 새롭고, 도전할 것들이 생겨나는 곳이니까!


나는 세상에 살고 싶다. 교사 세상 말고...!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 깊이 배어버린
'교사 물', '공무원 물'을
몽땅 빼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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