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을 차별한다

그런데 꼭 고쳐야 하는지는 모르겠어

by 해봄

그저께 가족상담 수업을 들으며,

난 양심이 콕콕 찔렸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을 차별한다고 있다는 것이 확 와닿았다.

더 혼란스러웠던 건

'난 이걸 고치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교사는 언제나 평등하고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교육받고 새기며 지내왔다.

이런 가치관은 교실 바깥 상황에도 적용되어 엄청난 자기 검열을 하며 스스로 질책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래서 내 안의 '교사'라는 자아를 빼고 싶어,

교사 티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휴직한 3월부터 이기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새 '과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요 며칠 너무 혼란스러웠다.






가족상담 수업 시간에

'순환적 인과관계'라는 걸 배웠다

가족(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가족(인간) 간의 갈등은 대부분 '원인에 대한 마침표를 서로 다르게 찍기 때문에' (서로서로 갈등의 시너지를 받고 탓을 돌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교수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서로 남 탓을 하지만~ 집단 구성원 모두가 사실 갈등에 한몫씩 기여했다는 거죠!! 다 똑같단 거죠!!"



교수님은 웃으면서 재밌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최근에 있었던 모임 내의 갈등 사건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했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제일 문제를 일으킨 건 나였다.

난 모임에 특히 싫어하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었고! 그분과 나는 너무 다르고 상극이라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싸움 직행열차라는 결과뿐이었다.

아, 둘 다 자기중심적인 부분은 비슷한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이 너무 밉고, 함께하는 게 힘들어 이전에도 모임 하차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다시 모임에 합류하게 된 건 친구와 언니들과의 시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게 "네가 지금까지 휴직해서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프로젝트에 많이 신경 쓰고 기여를 해왔는데 아깝지 않니?"라고 물었고

솔직히 억울했다. 나도 휴직한 김에 좀 놀고 싶은데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쓴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날 터미널 소파에 앉아 다들 장문의 카톡을 쓰며 대화를 나누는데, 터미널 길가에서 함께하는 그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할 정도로!


친구와 언니들과의 시간이 더 바랄 것 없이 좋았고,

그래서 나는 재합류를 내가 결정했다.

그 누구의 영향도 아니고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재합류한 이후로 '본격적인' 출간 과정에 돌입했다. 학창시절 내내 '대표'라는 자리가 너무 싫었고, 추천을 받아도 한사코 거부했던 내가 얼떨결에 저자 대표를 맡게 되었다.


출판사와 피드백이 오갈 때마다 저자 대표를 던지고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차마 놓고 싶다는 말을 못 했다.

다들 너무 지쳐 보였고, 이 중에서 제일 한가한 게 난데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그냥 이기적이었어야 했는데 이땐 왜 그랬을까






"괜찮아요. 전 시간이 많잖아요"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난 안 괜찮은데 솔직히 말했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모임 분위기도 쳐지고,

중간에서 새우등 터지며 잔소리를 계속해야 했다.

결국 나는 한계에 도달했고,

그 한계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풀었다.

그분도 날 싫어하는데 억지로 같이 하는 건 맞으니,

그동안 쌓아왔던 미움을 모두 쏘아버렸다.



평소 대화가 안 통한다는 평을 받던 그분이었기에

나는 거침없이 더 강하게 화를 표출했고, 비꼬고,

인격모독 빼고는 다 한 것 같다.

좋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마음껏 화내고 내가 하차해야지 했다.

어쨌든 이 갈등의 원흉은 내가 복귀한 것 때문이니!!




그리고 다음날 그분에게 전화가 왔고

그분은 전화를 걸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며 "카톡방에서 말하지 말라는 게 뭐하는 짓이냐" 하셨다.


나는 "아, 그거 갑질이요! 선생님도 대표 시절에 갑질 많이 하셨잖아요? 그래서 전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도 저 싫으시잖아요? 우리 이제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전화로 말하자고요! 다른 선생님들 불편하시니까."


그랬더니 대체 뭐가 불만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기에,

나는 차분하게, 사실은 화가 나는 정도를 넘어선 나머지 화가 나지 않아 냉소적인 태도로

"전 선생님이 남의 말 끊고 듣지 않는 게 너무 싫어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해봤는데 기분 어떠세요?"


그분은 말 그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 부들부들 떨었고, 나에 대해 인격 모독을 퍼부으셨고, 나와 친한 다른 선생님을 언급하며 차별 대우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차단하셨다.

잠수 타고 사라진 구남친 n호 이후로 처음 당하는 차단이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분과 똑같이 행동해놓고 내로남불을 한 것이다.


이 얘길 듣고 나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모임도 내가 제일 잘못했고, 좀 더 잘못하고 덜 잘못한 사람도 있고, 모두가 어떻게든 갈등에 기여했을 텐데 나는 대표라는 자리를 권위로 사용해 사람을 차별했구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건 틀림없었다.
난 완벽한 차별주의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분에게 미안하지 않다.

며칠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분명 나 좀 너무했는데 사과하거나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실 차단당했으니 더 이상 대화도 할 수 없다.

더 솔직히는 대화하기 싫다.



나는 그분과의 갈등 이후로 많이 아프다.

할 수 있는 게 엎드려서 책 보기와 누워서 글쓰기뿐이다. 벌 받은 것 같다.


그분도 아마 어떻게든 벌 받았겠지.

그냥 우리 둘 다 똑같이 미성숙한 성인이니 각자 벌 받고 앞으로 영원히 안 만나면 좋겠다.




그런데 차별주의자가 된 나는 어떡하지?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정성 들이고 싶은데,

그건 내 욕심일까. 그냥 차별하면 안 되나


나도, 쟤도, 사람들도 공부할수록 더 어렵다.


그냥 다음 생애에는 사람 말고,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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