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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Oct 20. 2022

유치원은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아이들의 공간에 아이들이 없다

휴직 이후 행정처리로 인해

유치원에 다녀온 적이 두세 번 있다.

한번 다녀올 때마다 며칠을 앓아누워야 했다.

그렇게 몸소 겪고 알게 되었다.


이제  유치원이라는 공간이  트라우마라는 .





유치원이 있는 동네만 와도 심박수가 상승하고,

눈앞에 유치원이 보이기 시작하면 호흡이 어렵고

시야가 뿌옇고 누런 빛으로 변했다.

귀에서는 사이렌을 울리는 듯한 이명이 들렸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털썩 풀려 주저앉았다.



이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신 원감님께서는

감사하게 두 달 반에 한번 필요한 각종 휴직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유치원에 갈 일은 없었다.

유치원이 있는 그 동네에 가는 것을 피했다.

그래서 애정을 가졌던 피아노 학원도 가지 못했다.

유치원 근처에 학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실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해봄 선생님, 받아가야 하는 게 있는데
이건 직접 수령이 원칙이라
유치원에 와야 할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버겁지만 일상생활도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데

유치원에 간다고? 다녀오면 상태가 나빠질 텐데....?

일단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동안 고민 투성이 속에 살았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행정실장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토요일에 공사를 하게 되어서
공사 감독하러 오전에 잠깐 출근할 거야.
그땐 아무도 없는데   있겠어요?

고민도 없이 갈 수 있다고,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를 거듭하고 전화를 끊었다.

'실장님 외엔 아무도 없는' 유치원이라니

무언가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났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토요일에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요동쳤다.

호흡도 갑갑했다. 귀에서는 작게 삐-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정도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이 정도 증상은 평소에 집 밖에만 나와도

자주 겪는 일이니까....!

심호흡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유치원에 들어갔다.



내가 떠난 지 몇 달이나 되었다고,

유치원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정문에서 건물로 들어가기까지의 짧은 데크 길은

꽃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도자기 인형과 함께.

이전에도 꽃은 있었지만.... 도자기 인형이라니,

덕분에 좁던 입구가 더 좁아졌구나 싶었다.


게다가 꽃은 누가 봐도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름표를 만들어 꽂아두었지만,

영어로 된, 길고 발음이 어려운 꽃 이름들.

평소 꽃에 관심 많은 나도 전혀 모르는 꽃들이었다.

주변은커녕 꽃시장에서도 본 적 없었던,

아마 화훼 단지나 농장 정도는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생소한 꽃들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어르신 취향.

아이들이 평소에 생활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꽃은

절대 아니었다.

문득, 작년 봄날에 아이들과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꽃 관찰을 하고 궁금한 점을 알아보는 활동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적어도, 꽃다발을 사면 볼 수 있는 꽃이었는데!

내가 마침 꽃꽂이를 취미로 배우고 있던 시기여서

아이들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의 꽃들은 그런 활동은 못 할 것 같았다.

그저 구경하고 예쁘다~ 하고 끝낼 수밖에 없는,

어른에게도 생소하고 또 생소한 꽃들.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환경, 꽃은 전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짧은 꽃길을 순식간에 지나니

우리 반 아이들이 오리 사자 게임을 하고 놀이하던

작은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작은 데크는 더 좁아져있었다.

이곳에서  이상 오리 사자 게임은 못할  같았다. 


각종 식물이 데크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도 상황은 같았다.

이름도 길고 어려운 식물들.

식물의 변화과정을 관찰하기 어려운 식물들.

"그새 식물이 주인인 데크가 되었구나' 생각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도 식물들로 가득했다.

안 그래도 좁은 유치원이어서, 화분 몇 개 추가된

것만으로도 훨씬 비좁아진 느낌이었다

행정실 문을 열었더니,

내 키보다 큰 식물의 잎에 문 모서리가 스쳤다.

'이름 모를 큰 화분아.. 너도 여기서 건강하게 오래

살지는 못하겠구나.'

나에게 너무 큰 트라우마였던 탓인지,

이곳에 있는 식물조차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이렇게 된 이상 윗 층은 안 봐도 뻔했다.

그곳도 좁은 복도에는 과분하게 커다란 식물 화분

들로 가득하겠지.






행정실에 들러 실장님과 오랜만에 만나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휴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복직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건강 상태를 전하며,

아쉬움을 담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쩌면 오늘이 얼굴을 보는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유치원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머릿속에는 식물과 꽃, 도자기 인형들만 생각났다.

어른이 보기엔 예쁠지 모르겠지만

과연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일까?

적어도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좁아졌다고,

노는 데 걸리적거린다고 싫어할 게 분명했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식물과 꽃, 도자기 인형을

구매하면서 아이들 생각은 단 한 번이라도 했을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나팔꽃,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포인세티아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

아이들에게 친숙하고, 본 적이 있으니

아이들도 꽃과 식물에 더욱 관심을 가질 텐데...!




그저 아름다운 배경인 꽃과 식물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경험과 배움기회가 되었을 텐데,

유치원이라는 이 공간은

과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맞는 건가?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를 대며 어른의 취향에

맞는 공간으로 꾸며낸 것은 아닐까...?

언제나처럼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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