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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Oct 24. 2022

방학 당직에 시험공부하는 발칙한 교사

전화받으라고 절 부르신 건가요?

모든 교사에게는 방학이 있다.

약 한 달가량 되는 긴 시간.

일부 사람들은 방학이 일 안 하고 돈 버는 기간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근무기간이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

근무기관 및 연수기관을 벗어나, 자유롭게 교사들이

 자기 연찬을 하도록 법적으로 주어지는 기회이다.




교사는 어린 학생들에게 항상 모범이 되는 말과 행

동을 보여야 하기에 유독 소진이 많은 직업이고,

교사의 소진은 교사의 상호작용의 질을 낮춘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교사도 사람인 이상,

소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기에

주로 '41조 연수'기간을 통해 재충전을 한다.



'41조 연수'기간에는 학교와 잠시 거리 두고 안정을

취하기도 하고 자기 연찬(자기 계발)에도 힘쓴다.

그리고 연수도 정말 많이 듣는다.....

기본적인 의무 연수 외에도 매년 60시간의 연수를

추가로 이수해야 하는데(심지어 점수도 나온다)

의무 연수만 해도 받아야 할 연수가 빽빽하기에

주로 교사들은 방학을 이용해 듣고 싶은 연수를

선택해 듣는다.


여행도 다녀오고 놀기도 하지만,

우리 유치원의 경우 관내를 벗어나는 여행은 41조

연수가 아닌 개인 연가를 사용해 다녀온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학사일정과 소진에 치여 하지

못했던 취미 활동을 즐기고,

다음 학기를 버틸 체력 준비를 위해 운동을 한다.

다음 학기 또한 언제나처럼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

갈게 분명하고, 또 수업 준비는 못할 거니까

미리 교육자료를 만들어두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밖에서 보기엔 모두 쉬는 것이나 다름없이 보이는

연수, 자기 계발, 취미, 여행, 운동, 자료 제작 등이

모두 다음 학기 교육의 뼈와 살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는,

취미 꽃꽂이 덕에 원예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고,

피아노를 방학 동안 연습하고 아이들에게 연주하니,

무려 반 이상의 어린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가져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ㅎㅎㅎㅎㅎ

방학 동안 연수를 듣고 열심히 공부해 취득한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자격증 덕에 '위인'이라는

주제로 놀이를 진행하며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보다 재밌고 유익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다.






교사에게 주어지는 방학이라는 시간은,

또 교사의 개인적인 취미와 자기 계발과 삶은

분명 교육에 있어 큰 밑거름이 된다.

슬프게도 이런 특성 때문에 삶과 학교가 구분되지

않아 더 소진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앞서 적어둔 것처럼 일부 사람들은 이런 교사들의

방학을 두고 '논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유치원의 관리자가 아닐까 싶다.






유치원은 '방과 후 과정 아이들이 유치원에 온다'

핑계로 교사에게 방학 당직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방과 후 과정은 수업일수에 해당하지 않고,

방학 중 방과 후 과정을 위한 인력이 충분히 존재

하는 상황에서도 관리자의 고집은 꺾이지 않는다.


관리자는 맡고 있는 직책이 유치원 관리이기에

출근하는 것이 맞지만, 교사들에겐 방학 당직이란

소중한 41조의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치원의 방학 당직 주 업무는 전화받기와

벨 소리 나면 문 열어주기이다.....

방학이기 때문에 전화가 많이 오지도 않고

초인종 소리는 등원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울린다.


물론 교사들이 나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매일 한 명씩의 교사가 출근해 단순히 전화받고 문

열어주기를 요구하신다면?

10명이 되지 않는 소인수로 구성된 유치원 교사는

꽤나 많이 방학 중에 출근해야 한다.

공립유치원의 대부분은 3학급 정도의 병설이니까.


다름 아닌 전화를 받기 위해
초인종 울리면 문 열어주기 위해
유치원에는 관리자와,
방학중 방과후과정 운영 인력이 존재하는데도!




그렇다면 유치원 관리자들은

교사의 41조 연수를 '전화받기'나 '문 열어주기'보다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나는  방학 당직 중 전화도 안 오고, 벨도 안 울리는

중에 연수 시험공부를 했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슬프지만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관리자의 눈에 공립유치원 교사는
추가적인 돈이 들지 않는 인력인 것일까?


난 항상 방학 당직에 와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집에서 또는 다른 공간에서 자기 계발

하고, 연수 듣고, 취미생활하고, 건강관리하고,

시험공부하는, 가끔은 여행도 다녀오는

평범한 방학을 누리고 싶었다!

이미 공립학교의 '교원' 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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