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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r 08. 2023

유치원 교실의 젠더

미래의 성역할을 만들어 나가기를

gender (사회적) 성 : 한 사회 문화권에서 구성원이

합의하여 결정한 성 역할 개념

*불변의 요소가 아님


유아임용고시생 시절 마르고 닳도록 공부하던

유아 사회, 정서 발달 범주에는 성차별과 성 역할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생득적 성별을 인식하고,

자신의 성별에 대해 사회에서 정한 성역할을

기대받는 '성 유형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에 맞는다고 여겨지는 성역할을

학습하고 사회적 성에 대한 개념을 형성한다.


자신의 성별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학습하고

성 역할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

그리고

 '특정 행동이 남성 혹은 여성에게 배타적으로

적용된다고 판단하는 사고'인

성 역할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시기,


즉 조금이나마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유아기다.

그 나이대 유아들이 교육받는 곳이 유치원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특히 7세 학급을 맡아 지도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이미 성 역할 고정관념이 깃들어 있다.

부모의 잘못도, 교사의 잘못도 아니다.  


부모나 교사가 직접적으로 성 역할 고정관념을

주입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삶의 경험을 통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성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비교적 성 역할에 대해 폐쇄적 인식을 지닌 동양권,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몇 년을 살아오며

가랑비에 잎이 젖듯이

우리나라에서 기대되는 성 역할을 학습한 것이다.




이미 성역할 고정관념이 형성된 유아들에게

교사는 큰 역할의 '성인 여성(남성)의 모델'이다.


유아기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진리나 마찬가지로 여겨지는 데다가, 은연중에

교사의 고정관념이나 신념이 수업과 생활지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전통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기를, 그렇게 타고난 성별에 갇히지 않고

고유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길 바랐다.


그건 내가 내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은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가 주된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교육하고 싶지도 않았다.

(실제의 나는 페미니즘에 꽤 관심이 있지만!)


교실에서 성 역할에 대해 개방적으로 생각하고,

성별의 이유가 아니라 그저 개인의 다름으로

서로를 존중하길 바랐다.

아이의 고유한 매력과 장점이 '성 역할'이라는

사회적 개념에 갇히지 않았으면 했다.


성 차별에 대한 가치관은 나와 헤어진 이후에

더 많이 경험하고 자라서 오롯이 자신만의 가치를

확립할 수 있을 때 형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성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니

다른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현실에서는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교실에서는 이 생각을 신경 쓰고 살았다.


'여자여서' 머리가   아니라, 너희들이 선생님 머리를 만지고 놀이하는 게 좋아서 기르는 거야!


'여자지만' 화장을  하는 것은 
선생님은 화장을 안 한 얼굴도 좋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아침에 화장할 시간에  자고 싶어!


'여자지만' 치마보다 바지를  많이 입는 것은
유치원에서는 바지가  편해서야.
물론 치마를 입고 싶은 날에는 치마를 입는단다!


'여자여서'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니야.
선생님은 몸을 크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금씩 손을 움직이는 것을 더 잘하는 사람이야.
어때? 선생님 피아노 잘 치지 않니?


여자들예쁘고 남자들멋있는  아니야.
선생님에겐 너희 모두가 예쁘고 멋져!


여자도, 남자도 울어도 괜찮아.
슬프거나, 너무 무섭거나, 놀라면 마음껏 울어
선생님이 달려갈게. 괜찮아질 때까지만 울면 돼.


아이들은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아예 버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은

남자라서 분홍색 물건은 절대 가져갈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가 없었다.

여자여서 줄넘기를 못하는 게 절대 아니라 자신은

줄넘기가 재미없어서(ㅎㅎㅎ) 못하는 거라며 당당

하게 내 취향이 아님을 말하는 조금은 뻔뻔한(?)

어린이가 되었다. 내 마음엔 쏙 들게 자랐다.


사실 한국의 아이들로 살면서

아예 전통적인 성역할을 학습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자라게 되니까.


그래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되도록이면 빠른 시기에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트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능을 가장 착실히 수행하고 있는 곳이

유치원임을, 유치원에서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을 세상이 알면 좋겠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된 세상에는
전통적 성 고정관념을 학습한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성 가치관을 확립한 사람들끼리의
젠더 갈등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물론 젠더갈등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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