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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Feb 15. 2023

전쟁터에 두고 온 동료들

언제나 응원합니다

2022년 2월 28일

휴직 전 마지막 정상 근무일,

마지막 날 까지도 우리는 야근을 했고

역시나 우리 유치원답게 야근을 해도 된 건 없었다.


동료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새 학기 준비가 되지

않으니 다음날인 삼일절에도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게 동료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나는 언제일지 모를 복직일을 기약하며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퇴근 지문을 찍었다.




내가 퇴근 지문을 찍는 순간,

동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축하 노래를 부르며

선물과 정성 어린 편지를 전해주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에 너무 크게 놀라서  

허둥지둥했고, 알 수 없는 큰 감동에 휩싸였지만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너무 놀랍고 감동이라서!



이제 진짜 이곳에서 벗어나는구나

내가 휴직을 한다는 것,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돌아온다 해도 언제 어느

유치원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퇴근 지문을 찍은  순간부터  여기서 벗어난다'


그렇게 진짜 유치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할 줄은

몰랐지만!




의외로 휴직 직후에는 벗어남을 느끼지조차 못했다.

그동안 아팠음에도 꾹꾹 누르며 견뎌왔던 상처가

짓무르고 곪아 화수분처럼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가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지,

언뜻 보면 그저 기분이 좋지 않은 병인 우울증이

멀쩡한 사람의 당연했던 일상을 앗아간다는 걸,

그리고 왜 사람들이 우울증을 심하게 앓게 되면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되는 건지,

다 알게 되었다.


머리로만 알아도 충분했을 텐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까지도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말았다.

이게 바로 내가 유치원에서 고통을 외면하고

억지로 참아온 것에 대한 벌인 것 같았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천벌.




그렇게 나는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영혼이 빠져나간,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멍하고, 비참하고, 눈물샘이 마르는 찰나가 없었다.


가끔 가족과 친구들이 데리고 나와 평소 좋아하던

꽃구경과 산책을 선물해 주었고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서비스였을 뿐.


나는 생명이 겨우 붙어있는 상태.

내게 생명이 붙어있다는 것을 원망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끝없이 짙은 어둠에 나름 적응을 했다.

어둠에도 불구하고 그저 살아내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한 순간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건

동료들의 소식이었다.


동료들은 내가 혹시나 유치원 이야기를 듣고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병세가 악화될까 봐

직접적으로 유치원에서의 사건을 말하지 않았지만

sns스토리에 담긴 사진 한 장, 가끔 주고받는

메시지의 단어 하나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또 어제보다 더한 오늘이구나....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 않구나....



휴직하기 전부터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동료들이

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내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 함부로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전쟁터에 전우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느낌.






우리는 개원하는 유치원에 함께 신규 발령받은

비운의 동기이자, 전우였다.

아무리 애써도 굴러가지 않는 유치원을 억지로

굴리느라 다치고 아프고 무뎌지고 체념했다.


유치원에서의 기억은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기억들이 사라지는 건 싫었다.

아마도 항상 내 옆에 있던 동료들 때문이지 않을까?

함께 고생했고 아팠는데 나만 빠져나왔다는 게

사실은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

마음 같아서는 다 같이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우리 보석 같은 선생님들이 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런데

정기 전보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할 줄 알았던

우리 동료들은 나의 휴직을 시작으로,

하나 둘 유치원을 떠나게, 어쩌면 탈출하게 되었다.


다가오는 새 학기에는

당연히 나는 아직도 많이 아프기에 돌아갈 수 없고,

한 선생님은 파견을 가게 되셨고

한 선생님은 다른 유치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동료들은 9명이 나누어 짊어지던 짐을

7명이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파견에 성공한 동료에게는 존경을,

유치원 이동에 성공한 동료에게는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여전히 유치원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응원과 믿음뿐이다.


우리 선생님들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선생님들이 자신을 소모하지 않으면 좋겠다.

세상이 우리 선생님들을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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