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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Feb 15. 2023

시위하는 교사

교육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지난 일요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 거리에서

'유보통합 졸속행정 반대 전국교사결의대회'

즉 유보통합 반대 집회가 있었다.


이 집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예정보다 제주살이를 급하게 정리하고 올라왔다.

나는 시위하는 교사니까.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내는 민주시민의 모범이니까.





교육공무원 교사의 신분으로 시위를 할 수 있냐고?

당연히 할 수 있다.  파업만 하지 않는다면.

제주도에 함께 있던 식구들은 '시위하는 교사'

나를 보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신기한 듯했다.


하긴 시위하는 교사라니,

꼭 집회에 참여해야 한다며 큰맘 먹고 시작했을

제주살이를 하루아침에 정리해 버리다니,

그것도 이제는 시위가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게

브이로그까지 찍어 현장 분위기를 공유하다니,

신기할 만하다.

이제는 부모님도 "나 시위 다녀올게"라는 딸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이니 말이다.




제주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와서 집에 들러

빠르게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시위 현장으로 갔다.

시위가 처음인 것도 아니고, 종종 있는 일인 데다가

슬픈 현실이지만 유아교육계는 시위할 일이 많이

일어나기에 이제는 시위의 분위기가 익숙했다.



그런데 이번 시위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시위 시작 직전에 겨우 시간을 맞추어 도착했더니

딱 봐도 엄청난 인원이 모여있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엔 유아교육 관련 시위 역사 상

이 정도의 인원이 모인 적은 없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피켓을 쥔 선생님들이 앉아계셨다.

집회에서 이렇게 자리 잡기가 힘들다니,

뭉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유치원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다니...'

그만큼 이번 유보통합은 큰 위기였던 것이다.

평소 크게 뭉치지 않는 집단인 유치원 교사들인데

먼 길을 와서 큰 마음먹고 목소리를 낼 만큼!

무려 3000명 이상의 유치원 교사들이 모였다.





유치원 교사들에게 닥친 정체성의 위기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교육자라는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유치원 교사들.


유치원 '교사'들에게 이번 유보통합 정책은

너무나 급하게 진행되었고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이 배제되었고

'교육자'라는 정체성을 뺏기고 그저 돌봄 서비스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위기였다.




현재까지 제시된 유보통합 방안 그 어디에도

'유아교육'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직 돌봄 '서비스', 경제적 효율성, 관리의 수월함만

밝혀졌을 뿐.

보육과 교육의 요소는 분명 다르고 그 전문성 또한

다른 건데, 교육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있나!



학부모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사실 절대 학부모를 위한 정책도 아니었다.

학부모들은 일터로,

아이들은 돌봄 기관으로 보내는 정책. 이건 학대다.

그 어떤 부모가 아이를 나라에서 돌봐줄 테니

일이나 많이 하라고 하는 정책을 좋아할까?


아무리 요즘 부모들이 육아를 힘들어한다 해도,

애초에 유아교육기관은

육아를 대신해 주는 곳이 아니라

유아기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곳이다.

교육 기관이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학교'다.


학교와 돌봄 기관을 통합한다....?
멀쩡히 존재하고 있는 유아들의 학교를,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은
교육자로서의 '교사'들이 있는 학교를

그저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로
학교를 제3의 기관으로 합쳐버린다.

이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아이일까, 부모일까, 교사일까?
단언컨대 절대 이 셋에겐 좋은 점이 없다.


유아교사들이, 그리고 내가 이유 없이

'시위하는 교사'가 된 건 아니다.


우리는 정치적 이슈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도 않고,

이익집단도 아니다.

이익집단이라기엔 교사들은 가진 게 없다.

교사 정체성의 뿌리인 교육조차도 앗아가는 마당에!


시위하는 교사는

시위로 인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잃지 않기 위해,

사회적 인정은커녕 우리들 밖에 인정하지 않는

'교육자'라는 정체성이라도 지키기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서 피켓을 들고 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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