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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r 11. 2023

다음 소희, 그리고 다음 해봄

어쨌든 다음은 없어야 한다

나는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영화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글을 더 좋아해서다!

어쩌다 보게 된 다음 소희,

이 영화는 봤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은 꼭 알아야 할 이야기였기에!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할 어른이고,

아이들 가까이에 존재하는 교사이고,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피해자인 나는 알아야 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며

춤 추기를 좋아하는 해맑은 여고생이다.

특성화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학교 교육의

성과 지표로 본다.

일자리의 질, 업무의 곤란도, 그리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그런 것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간

소희는 엄청난 일들을 겪게 된다.

엄청난 일이라고 적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누군가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기도 하다.


엄청난 일을 겪은 소희를 둘러싼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

그녀는 수사를 하며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고 2가지 이유로 남의 일이 아닌 듯해

마음이 먹먹했다.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과 국가에게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서울 어린이들이 만든 인권 선언문

보호뿐만이 아니다.

나이에 따른 발달 수준에 맞게 놀 권리와 꿈을 꿀

권리도 있고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

자신과 관련된 일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소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 권리들을 모두 보장받고

있을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권리가 있음을 알기나 할까?

어른들 중에 아동인권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알고

아동의 권리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거다.


그랬기에 소희와 같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부속품으로 소비되는

잔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지켜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의 어두운 부분만 경험하고

떠나버리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나의 세상도 물론 어두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두운 그 와중에도 빛이 드는 날이 분명 있으니

아이들에게 틈새 속으로라도 빛을 보여주는 어른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절대 부재한 것 같은 개념인

아동인권에는 대단한 모순이 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지나치게 특정 아동의 인권만

존중된다는 점이다.


교육현장에서는 그렇게 아동인권 존중을 외쳐대며

다른 학생의 기본권을 앗아가는 것도 허용하면서

오히려 사회에서는 철저히 외면해 버리는 일이

참 모순되었다.

반드시 다음 소희는 없어야 한다.




그리고 산으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현장!

사회에서의 아동인권 인식 수준은 바닥이면서

반대로 지나치게 특정 아동의 인권만 존중해 버리고

다른 아동을 포함한 교사의 기본권은 밟히고 있는

요즘 학교현장.


특정 아동으로 인해 조용히 피해를 입는 아이들과

특정 아이의 한 마디에

천하의 못된 사람이 되어버린 교사들이 있다.

나도 그 천하의 못된 교사 중 한 사람이다.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오해 하나로 교사는 범죄자가

될 뻔했고, 그 오해를 해결할 능력이 교사에겐

충분했지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오해를 한) 특정 아이를 존중' 하기 위해

동급생과 교사는 하루아침에 낙인찍히고 만다.


동급생들은 가해한 사실도 없는데 가해자가 되고

교사는 일어나지 않은 일로 인해 사건의 방관자,

조사의 대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교권은커녕 인권이 짓밟히는 수준의 비난.

그 누구도 교사와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게 정말 학생인권 존중이 맞는 걸까



교사는 특정 학부모의 비난과 관리자의 의심 속에

어떻게든 자신을 지켜내야만 한다.

교사가 무너져 버리면 아이들이 가해자가 될 테니,

그렇게 아직 의사소통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일상인

서툰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한 학급의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를 겪는다.


책임을 떠넘기고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

각자의 위치와 지위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문서

상에는 명확하지만, 현실에선 권한만 챙기고

책임은 돌리고 돌리고 돌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사에게 돌아가고,

교사가 이렇게 큰 일을 겪으며 교육과정 운영을

병행하니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교사가 공격받고 손상을 입었지만,

남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공격받은 교사이니!


공격받은 교사는 이제 교육현장이 두렵다.

교육에 대한 최선이 범죄자로 돌아오는 이 현장이


다음 해봄은 없어야 한다.
내가 끝이어야만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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