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유치원 교사의 우당탕탕 하루 #1

교실에서 우당탕탕

by 해봄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은 3D 직업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인데,

개인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유치원이 처음이 아닌 나에게는

'힘들다' 세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유치원 교사가 힘든 이유는

(말하자면 며칠 밤을 새울 수도 있지만...!)

노동 밀도가 높다

교사가 교사로서의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

학습자가 어리고, 요구사항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잡무가 너무 많다. '이런 것까지?' 싶은 것도 모두 교사의 몫이다.

이 외에도 수천 가지...!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공립유치원 교사의 하루,

하루 일과 속에서 느껴지는 살인적인 노동 밀도를

이야기하고 싶다!


노동 밀도란,

'일정한 단위 시간 안에 작업에 소요되는 노동량'

업무시간 동안 얼마나 숨 쉴 틈 없이 지내는가

의 의미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작년(2021학년도) 내 하루 일과를 되새겨본다.

공립유치원,

특별한 행사가 없는 일반적인 날 기준으로!

7살 2학기 11월 기준이다.

(즉, 교사의 손이 가장 덜 가는 시기 기준이다.)


AM 8:20 출근 중

유치원 앞 편의점에 도착한다

피곤해서 한껏 내려간 어깨를 자랑하며 비타민 음료를 구입한다.

이곳에서 뭔가 사고 있으면 꼭 동료들이 한두 명 등장한다.

같이 생존 식량을 챙기고 반만 뜬 눈으로 유치원을 향한다.


AM 8:25 출근 직전

유치원이 눈앞에 다가온다. 들어가기 싫다.

동료와 서로를 끌어가며 겨우 들어오고, 출근 지문을 찍고 온 유치원에 "안녕하세요~" 인사를 돌린다.

하지만 이곳에 정말 안녕해 보이는 사람은 몇 없어 보인다.


AM 8:30 출근

비타 음료 한 모금을 마시고, 아침 약을 복약한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오늘의 미세먼지농도를 확인한다.

후.... 나쁨이다.

피곤해할 새도 없이 학부모님께 미세먼지 나쁨 안내 알리미를 보내고 현재 미세먼지 상황 자료를 캡처해 출결 증빙자료를 만든다.


AM 8:40 아침 업무

앗 교육과정 시작이 10분 남았다...

오늘은 뭐 하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어제도 행정업무만 하느라 수업 준비를 못하고 갔기 때문이다.


AM 8:50 교실 입장

결국 뭐할지 구상만 하고 아무 준비 없이 교실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다.

하... 이제 겨우 시작이라니




AM: 9:00 아침인사

일찍 온 아이들을 포함해 아이들이 우르르 등원하는 시간, 선생님과 친구에게 인사하기, 자기 물건 스스로 정리하기, 깨끗하게 손 씻기를 지도한다.

그래도 우리의 일곱 살은 무려 유치원 경력 3년 차.

"어서 와~보고 싶었어(진심이다. 이 유치원에서 보고 싶었던 건 그나마 너희들.)"

그리고 할. 일. 하. 세. 요.

알아서들 착착 정리하고 손 씻고 온다

역시 나의 거대한 귀염둥이들:)


AM: 9:10 오전 자유놀이
사진은 참고용입니다. 1학기 시절 사진이에요!

칠판에 급하게 오늘의 일정을 적어 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지금 노는 시간 맞아요?"라고 알면서도 확인차 계속 물어보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확인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평소에

"알고 있는 건 선생님께 물어봐서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 자신을 믿으세요"를 반복했다.

똑같은 얘길 계속 들으면 내가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알아서들 자유놀이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다.

담임선생님은 저 시간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잘(?) 이유를 대면 쿨하게 바꿔준다는 걸.

그래서 열심히 확인을 안 하는 걸까?*^^*


놀이 시간은 나의 강박증이 가장 빛나는 시간.

미어캣이 된 마냥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위를 둘러보고, 온몸의 모든 감각으로 이 교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다. 오른쪽이 싸한 걸 보니 여자 친구 두 명 사이에 미묘한 감정 갈등이 있는 듯하다.

일단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본다.


왜냐하면 저 쪽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장 제지하러 간다.

내 교실에서 칼, 총, 전쟁놀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치기 쉽고, 다칠 만큼 전쟁놀이를 하다 보면 서로 감정도 상하는데 중재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시 여자 친구 두 명의 상황을 눈치 본다.

일단 같이 놀고 있는 걸 보아하니 해결된 것 같기는 한데 모른다. 더 지켜봐야 한다. 한 명이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참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모두가 다 있는지 세어보고,

위험한 행동 하는 친구는 없는지,

교사 몰래 다투고 있지 않은지 눈치를 살핀다.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이 시끄러운 공간에서 미어캣처럼 주위를 살피다 보니 벌써 하루가 다 끝난 듯 피곤하다.


AM9:50 정리시간 협상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이 10분 남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정리를 빨리 할 테니,

10시 10분에 정리하면 안 되냐고 협상을 제안한다.

너희 정리 정말 부지런히 할 수 있니?
약속 지킬 수 있지? 믿는다.
정리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강당 놀이시간이 줄어든다는 점 기억하렴

ok. 정리 부지런히 하는 조건으로 협상 타결.

하도 협상을 자주 해서 이제 아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너무 잘 이야기한다. 무서울 지경.



AM 10:10 진짜 정리시간


정리 시간임을 알리고,

아까 너희들이 '정리를 부지런히 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약속 지키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놀이시간 늘려줄 생각은 없다는 엄포를 두며.


유튜브에서 '마음이 급해지는 노래'를 틀어 긴박한 상황을 연출하고 정리를 지도한다.

아이들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 똑같이 마음이 급해지나 보다. 빛의 속도로 정리하려고 돌아다니는 게 웃기고 귀엽다.



AM10:50 수업 및 강당 놀이

빠르게 오늘의 수업을 마치고 강당으로 이동.

다행이다. 오늘같이 미세먼지 있는 날 교실에만 갇혀 있으면 아이들도 힘들고, 선생님도 힘들다.

에너지를 발산할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 루틴대로 스트레칭을 하고, 자유 신체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을 꺼내 설명하고,

놀이 끝나는 시간을 강조하며

안전 약속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리고서야 자유 신체 놀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니고,

교사의 강박증세가 빛을 발하는 길고 긴 시간을 가진다*^^*


AM11:30점심시간

아직도 점심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강당 놀이하느라 지친 아이들에게 물 한 번씩 마실 것을 지도하고,

크게 "식사 준비하세요" 외치면 곧 초등학생이 되는 우리의 7세들은 알아서 손 씻고, 식사도구 꺼내고, 소독된 가림판을 챙겨 자리로 간다.


교사는 아이들이 손 씻으러 간 동안 마하의 속도로 책상을 소독하고, 급식차에 배식을 세팅하고, 창문 개방, 영양교육 자료를 화면에 띄워 둔다.


아이들이 모두 알아서 준비를 끝내면, (고마워 내 사랑들아ㅠㅠㅠ)

간단히 오늘의 메뉴와 영양소를 소개하고, 식사 중 방역수칙 준수 잔소리를 퍼붓고는 배식을 시작한다.



나는 식이장애로 일반식을 못 먹어 점심 급식은 거른다. 음식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아이들을 살핀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나 오늘 물 한 모금 못 마셨네. 어쩐지 목에서 피맛나더라.' 재빠르게 수분을 공급한다.


그나마 점심 급식을 안 먹어서 이렇게 한숨 돌릴 수 있다. 그게 아니었으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밀어 넣으며 동시에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대서 그런지 이야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식사하고 놀이 시작하기를 선호한다.

식사시간에 장난을 하거나 이야기를 크게 하는 친구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날카롭게 쳐다본다.


반찬이 더 필요한 친구들에게 추가 배식도 하고,

먹을 만큼 먹고 정리할 친구들을 도와준다.

식기와 잔반을 급식차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엘리베이터에 태워 지하 조리실로 내려보낸다.

이 급식차를 치우는 동안에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시선은 항상 교실에 고정!


교실로 돌아와서 다시 책상을 소독하러 바삐 움직인다. 소독할 때에도 시선은 아이들에 고정!



작년에는 코로나 감염 확산 우려로 인해 점심식사 후 양치를 실시하지 않았다.

양치 지도까지 했다면...? 아마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 몸으로는 못 버텼을게 틀림없다.


PM12:20 오후 자유놀이

아이들에게 점심식사 후에는 잠시 자유놀이의 시간을 갖도록 해 준다.

오전에 놀다가 미처 충족되지 못한 놀이를 채우는 시간이라고 할까.

아이들은 놀아도 놀아도 놀이가 부족한가 보다.

더 많이 놀게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해.



아차! 귀가 전에 할 동화 수업 준비를 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내용을 아는 그림책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놀이하는 동안 재빠르게 선정해둔 그림책을 펼쳐,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포인트들을 미리 찾아보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 만한 질문들을 구상한다!

이 와중에 온 신경은 놀이하는 아이들에게 집중.

유치원 교사에게 멀티태스킹 능력은 필수다!


휴... 오늘도 수업 준비를 몽땅 교실에서 했다.

죄책감 한가득....

그리고 아이들에게 또 싫은 소리를 한다.


"집에 가기 전에 그림책 읽어줄게요! 정리하세요!"



PM13:00 그림책 수업

아이들에게 오늘의 그림책을 소개한 뒤,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상상하고 이야기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메서드 연기를 펼치며 그림책을 읽어준다.

유치원 교사가 되어서 숨겨져 있던 내 끼를 찾았다.


아이들은 '성인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참 좋아한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단어들로 말놀이를 하려고 한다.


내가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PM 13:20 귀가 준비

교육 과정 반 아이들은 집에 갈 준비를,

방과 후 과정반 아이들은 방과 후 교실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물론 우리의 일곱 살들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


가방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옷매무새가 단정한지, 물건을 다 챙겼는지를 한 명씩 확인해준다.

오늘 하루를 평가하고 귀가 인사를 나눈 뒤,

한 명씩 안아주고 문 앞에 줄을 선다.

아무리 코시국이어도 안아주는 건 포기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이제 정말 아이들과의 시간 끝.



PM13:30 귀가

방과 후 과정반 아이들을 방과 후 교실로 보내고,

교육 과정 반 아이들을 데리고 현관으로 나온다.

한 명 한 명 부모님께 직접 인계하고

오늘 대략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해드린다.


사실 머릿속은 혼돈인데 어떻게든 한 가지라도 기억을 짜내야 한다.

귀가 때 해드리는 한 마디에 교사에 대한 부모님들의 신뢰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난 뒤....

하얗게 불태워 가루가 된 것 같은 몸과 초점 없는 눈으로 좀비가 되어 교무실 자리에 주저 앉는다.


자, 이제 유치원 교사에서 행정공무원으로 직업을 바꾸어 볼까?


교무실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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