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의 추석 맞이 송편 전쟁

유치원의 추석이란... 너무하다

by 해봄

모든 직장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명절!

그중에서도 '추석'은

유치원 교사들에겐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얻을 수 있는 명절 연휴다....!


왜냐하면,

추석 전 행사가 엄청나기 때문에!

송편 만들기, 전통놀이 행사, 한복 입고 오는 날 행사 등등.....

대한민국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경험시켜주고 나서야 추석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 유치원은 '송편 만들기'와 '민속놀이 주간'을 운영했는데,

특히 송편 만들기는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난해 교육과정 평가를 마치고

새 교육과정을 계획할 때, 우리 유치원은 분명 송편 빚기를 '찾아오는 체험학습'으로 계획했다.

추석쯤 되면 코로나 상황이 나을 줄 알았던 거다.


솔직히 교사 입장에서는 외부강사가 와서 진행해주는 게 훨씬 편하고 교육적이다.


요리 활동은 과학 활동에 해당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재료를 탐색하고 오감으로 경험하며, 요리 과정에 따른 재료의 변화를 예측하고 직접 변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심지어 재밌기까지 한

아주 유익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요리 활동의 핵심은 아이들의 요리 겸 탐구과정을 촉진할 수 있는 '교사의 상호작용'이다.

아무리 재밌는 요리 활동이라도 교사가 진행하느라

바빠 아이들과 충분히 상호작용하지 못한다면?

그저 일회성 체험에 그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요리 활동은 아무래도 진행에 손이 많이 가고 정신이 없기 때문에, 외부강사님께서 진행해주시면

담임교사는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아이들의 요리를 더욱 교육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유치원 관리자들은 외부강사를 부른다는 걸

'교사들이 하는 게 없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같은 유아교육 전공자인데도 참 답답하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외부강사를 부르기 염려되어 송편 재료 키트만 가지고 교사들이 진행하라는

원장님의 말씀에 우리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정도쯤이야 뭐.... 그래도 키트를 구매해서 하면 되니 이번엔 생각보다 괜찮네'





요리 활동은 결국엔 아이들이 '먹는' 것이고,

혹시나 아이들이 먹고 아프게 되면 큰일이기에

유치원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이 기 빨릴게 뻔한 송편 빚기 키트 구입 과정은

찾아오는 체험학습 담당이었던, 막내 선생님이

얼떨결에 담당하게 되었다.

막내 선생님께서 행사 담당도 아닌데 말이다




하 지 만

역시 이 정도에서 끝나면 우리 유치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막내선생님의 자리로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은 선생님은 원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송편 재료 떡집에서 사서 하라고 하시네요.
키트가 너무 비싸다고...
가장 저렴한 떡집 알아봐야 해요.

모든 선생님들이 당황하고 내 속에선 천불이 났다.




키트가 비싸다니...?

원래 외부강사도 오는 걸로 가정하고 예산에 반영되었을 텐데, 외부강사가 안 오면 당연히 예상 비용보다 적게 드는 건데,

그 조차도 키트가 비싸다고...?

우리 예산도 많이 남아서 딱 봐도 연말에 엄청 많이 남을 것 같은 상황인데?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돈 아끼는 행동은 사립유치원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교육활동을 위한 예산이 충분히 책정되어있고, 예산이 여유 있게 남은 상태인데 키트 가격이 아깝다니....?




하지만 고집쟁이 원장님은 아무리 말해도 철옹성일 게 틀림없었고, 이를 직감한 막내 선생님은

유치원 근처의 모든 떡집에 전화를 돌려 단가와,

익힌 떡 반죽과 소를 납품 가능한지 알아보셨다.


납품 가능하다는 곳은 많았지만,

역시나 소분해서 보내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키트는 재료가 1명 단위로 소분되어 있고, 심지어

포장용기까지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떡집에서 산 익힌 떡 반죽과 소를 유치원에서 직접 소분하고, 포장용기 따로 구입하고 하려면

그냥 키트 사는 것과 비용 측면에서 다를 게 없었다.


교직원이 시간을 들여 소분 노동을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비용이 많이 드는 셈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님의 생각은 변함없었고,

결국 한 떡집과 거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한참 생태환경교육에 빠져계시던 원감님이

집에서 다회용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방안을 내셨고,

당연히 포장은 가정에서 가져온 다회용기로 대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실을 지나가면서 보니,

막내선생님이 '솔잎'을 검색하고 계셨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선생님 설마 저희 솔잎도 깔아요?
막: 네.. 솔잎도 깔라고 하셨어요.
나: 세상에! 처음에 말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솔잎 사는 것까지 하면 키트가 낫겠어요....

막: 유산지컵도 사고 라벨도 만들어야 해요.
나: 설마 유산지컵도 깔아요? 솔잎 있는데?
막: 네.. 라벨도 다회용기에 붙여야 해요^^

역시 유치원에서 불안한 마음은 언제나 적중.


환경 생각해서 다회용기를 가져오는데,

솔잎은 그렇다 치고 유산지컵까지 깔으라는게,

굉장한 모순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라벨을 만들어 다회용기에 붙여야 한다니!!

내가 학부모님이면 달갑지 않을 것 같은데...

라벨지는 깨끗하게 떼어내기도 쉽지 않은데...

정말 '우리 유치원' '우리 원장님' 다운 행보였다.




결국 키트 사서 수업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여러 가지 잡무를 떠안고 송편 빚기를 진행하게 되었다. 부족하지도 않은 '예산'을 핑계로!

결국 그 정신없는 과중에 미리 세팅.....해야했다.

아이들과 즐겁게 송편 만들기 활동을 진행했지만,

이건 우리 반 아이들이 일곱 살이라 가능한 일!

아마 다섯 살 아이들은 익혀진 떡 반죽이 생각보다 쫀쫀해서 모양 잡기에 애를 먹었을 것이고,

아마 담임선생님이 많이 손봐주셔야 했을 거다.




송편 만들기 진행하면서, 포장도 미리 세팅해두고,

아이들 손 씻기 지도하고, 앞치마와 머릿수건도 일일이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을 많이 찍어야 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상호작용을 해주지 못했다.....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날의 송편 만들기 활동도

분명 100프로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50프로의 역량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공립유치원에 오면 적어도 돈 아끼느라 교육 활동할 에너지를 뺏기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유치원이란 곳에 그런 유토피아는 없었다.

일곱 살 송편 명장 발굴

그래도 그날 송편 만들기를 한 덕분에

한 아이의 빛나는 재능을 발견했다. 일곱 살 인생에 송편은 처음 만들어본다는 아이였는데,

송편을 교사보다도 예쁘게 빚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 반에서 가장 크게 얻은 건
'송편 명장'을 발굴했다는 것뿐이었다.


언제쯤 교사가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내 생애에는 아마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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