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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y 25. 2023

탁아소 아니고 학교입니다

직업을 설명해야 하는 유치원 교사들

어떤 일 하시나요?
유치원 교사요.
요즘 애들 장난 아닌데...
애들 보느라 힘드시겠어요!


나름 공감해주려 하는 대답 같지만,

난 유치원 교사라는 말에 아이 보느라 힘들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정말 지겹다.

이 사람에게 또 유치원 교사는 애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한다.


지겹다는 내 고백에 당신은 당황스러운가?

당신도 유치원 교사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는가?




그렇다면 정상이다.

애들 보는 사람 아니라고 설명해야 하는 교사도

유치원 교사가 하는 일을 돌봄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다.


이게 2023년 대한민국 유아교육의 현주소다.

유아교육의 역할, 중요성, 가치는 유치원 교사들만 안다.
아니다, 그조차 일부 교사들은 모르는 것 같다

유아교육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유치원을
애들 놀아주는 곳으로 안다.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탁아소로 아는 것 같다


유치원은 정말 기초적인 것을 배우는 곳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미처 ‘배워야’한다는 생각은 떠올리지 못할 만큼

지구별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기초적인 것들이다.


유치원 교육과정 상에서는

실내외에서 신체활동을 즐기고,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과 상상력을
기른다.
자신을 존중하고 더불어 생활하는 태도를 가진다.
아름다움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창의적 표현을
즐긴다.
탐구하는 과정을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가진다.


신체운동, 건강 / 의사소통 / 사회관계 / 예술경험 /

자연탐구의 5가지 영역으로 구분된다.

굳이 따지자면 유치원 교육의 과목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상 전 과목+생활지도다.




교육과정 그 어디에도

‘밥을 떠먹여 준다.’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도록 한다.‘

‘집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행동한다.‘

‘친구랑 다투면 무조건 친구 잘못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다치지 않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움직인다.’


이런 내용들은 없다.

내가 위에 나열한 내용들은 말 그대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용납되는 것이고

태어나 세상을 산 지 얼마 안 된 아이이기에

어른들이 넓은 마음가짐으로 받아주는 것들이다.

이게 당연한 세상살이의 룰은 아니라는 말이다.



유치원에 입학했다면 이제

가정에 울타리 안에서 허용되던 기준을 동일하게

유치원 생활에 적용하면 안 된다.

유치원은 가정의 환경을 그대로 살려 아이를 돌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했던 것처럼,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존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을 배운다

당연히 집보다 불편한 곳이다.

누가 집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배우러 오는 곳이니 당연히 낯설고, 아이들에게는

최초의 사회생활이니 매 순간이 서툴고 어렵다.

물론 요즘에는 0세 때부터 어린이집에서 보육되는

아이들도 많지만,

본격적인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발달의 기초가

마련된 만 3세 시점부터는 단순 돌봄만 해서는

아이의 사회적 기술을 기르기 어렵다.

교육적 개입과 적절한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고,

실제로 사회적 상황에서 행동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때로는 친구와 다퉈도 보고, 손해도 보고, 내 욕구를

참아야 하고, 생활하다 다칠 수도 있다.

어른들도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고 잘 못해서 억지로 하기도 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은 부모들이 일하러 간 사이에 아이들을

일정 시간 동안 맡기고 돌봐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정해진 교육시간 동안 교육적 요소를 반영해

구성된 환경 속에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순간마다

배우고 경험하는 곳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배우러 오는 사람이고

유치원 교사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다만 가르치는 내용들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고,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생활하며

반복하고 내면화하기에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치원의 교육을 잘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 돌보미 취급을 받는데도,

유치원 교사들은 마음속의 작은 자부심을 힘들게

지켜가면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인생 최초의 교육,

아이가 자라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치니까.




그런데 힘에 부친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지겹다.

유치원의 학교 지위를 위협하는 유보통합이며,

갈수록 가정의 역할을 요구하는 양육자들 하며,

유치원을 믿지 못해 가방에 녹음기를 넣고 오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하며,


입시에서 가장 멀다는 이유로 외면되는 유아교육은

요즘 굉장히 위태롭고, 교사들의 사기는 수직 하강.

유치원 교사는 아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매번 설명하는 게 지겹고 언짢지만,

언젠가는 설명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하다.


진짜 유치원이 아이 보는 곳으로 변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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