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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y 29. 2023

이것은 발전인가 학대인가

얘들아 너희 7시에 일어날 수 있어?

최근 제3차 유아교육 발전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유아교육법에 의해 5년마다 유아교육 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함에 따라 발표된 것이다.

많고 많은 내용들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과연 이게 유아교육 ‘발전’ 기본계획이 맞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계획에 따라 시행되는 향후 유아교육의 운명은..?

밝음보다는 어두움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유치원 등원 시간을 현행 9시에서 8시로 당기는 것.

이 내용을 본 사람들은

“8시로 당기는 게 왜 문제지? 부모도 출근해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에서 명시하는 ‘등원 시간’은

교육과정 시작 시간을 의미한다.


즉 유치원의 모든 아이들이, 8시까지 등원한다는 것

유치원 0교시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맞벌이나 한부모가정 등의 사유로 인해

아침 돌봄이 필요한 유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아침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우리 지역 공립 유치원에서는 7시부터 등원 가능한

아침 돌봄을 실시하고 있다.

내가 근무한 유치원은 아침 돌봄 유아들 중에도

8시 이전에 등원하는 아이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침 돌봄에 참여하는 유아 외에는

9시부터 등원해 교육과정을 시작하곤 했는데

사실상 내가 준비한 대집단 활동은 10시부터나

가능했다. 지각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등원시간이 9시로 정해져 있음에도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를 깨워 반쯤 잠들고 투정 부리는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여 9시까지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차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에 의해

교육과정 시작 시간이 8시로 당겨지게 된다면?

고작 5세-7세인 아이들은 적어도 7시-7시 반에

일어나 씻고 옷 입고 밥 먹고 유치원에 와야 한다.


유아들의 성장에는 충분한 숙면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님들의 퇴근이 늦다 보니,

아이들도 부모님을 기다리다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약간의 시간을 보내면 금세 밤이 된다.


그런 아이들이 7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당연히 수면 부족이다.

아이는 충분히 자지 못해 일어나지 못하고 투정을

부릴 테고, 등원시간에 쫓기는 부모와 아이는

지금보다 더한 등원 전쟁을 치르게 될 거다.

실제로 유치원에 와서 어제 늦게 잤다며

꾸벅꾸벅 졸거나, 피곤하고 컨디션이 저하되어

투정을 부리는 어린이들이 많다.

받아 주는 교사도 지치지만 아이도 참 짠하다.




과연 아이들을 일찍 깨워 유치원에 밀어 넣는 것이

유아교육의 ‘발전’일까?

유치원 아이들은 이미 하루에 4시간 30분-5시간,

주당 ~300분의 교육 시수를 소화하고 있다.

이미 초등학교 1학년보다 교육과정 시간이 더 길다.


“교사들이 일찍 오기 싫어 반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오는 게 피곤하고 영 달갑지 않지만

교육과정 시간은 최대 하루 5시간이기에 일찍

교육과정을 시작한다면 그만큼 일찍 끝나게 된다.

결국 이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고작 5-7세 인생에, 7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비몽사몽 하게 8시까지 등원하고

5시간 동안 유치원 교육과정 시간을 소화한다.

교육과정 시간이 끝나면 방과 후 돌봄 시간이다.


이 네모난 유치원에 8시부터 갇혀 보호자가 데리러

올 때까지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이거, 아이들에게 참 괴롭지 않을까?

안 그래도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이제는 아침잠 잘 시간까지 뺏어버리는데,

이게 아동학대가 아닌가?

아동 기본권 침해가 아닌가?




누구를 위한 유아교육 ‘발전’ 기본계획일까?

이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대체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이 보는 이득은 없다.

득을 볼 만한 사람이 몇 떠오르지만 모두 어른이다.

그렇다면 어른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걸까?


점점 유아교육에 기대하는 바가 흐려져 간다.

발전한답시고 변화하는 것들 중 아이들을 위한 것은

없다. 아이들을 위한 것처럼 포장했을 뿐!

요즘 유아교육은 위태롭고 또 혼란스럽다.

조금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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