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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n 02. 2023

유보통합 괴담

아무것도 몰라 아무도 몰라

유아교육 현장은 매일매일 이슈가 터지는 곳이지만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코 유보통합이다.


요즘 유보통합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현재의 나는 휴직 중이고 현장에 근무하지 않지만

내가 근무하지 않는 동안 현장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버릴지 두려운 마음에 머리가 아프다.




*이 글은 100퍼센트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필요까지 있냐고?

적어도 나에겐 엄청난 문제다.

지금 내가 가진 가장 큰 전문성은 유아교육이고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유아교육이고

지금까지 20대 청춘을 모두 유아교육에 바쳤다.

그런데 유보통합으로 유아교육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른다. 과장 보태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내가 자신 없는 방향으로 변해버릴까 두렵고

지금까지 쌓은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두렵다.

무엇보다 유보통합으로 유아교육이 발전은커녕

국가에서 운영하는 집단 돌봄시설이 될까 두렵다.

유보통합에 관한 모든 것이 다 두렵다.





이렇게까지 두려운 이유는

유보통합이 분명 진행되고 있는데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개 휴직 교사여서 모르는 게 아니라,

진짜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어디까지

논의가 되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분명 진행은 되고 있다.


당연히 유보통합 관련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괴담 수준의 두려운 상상들이 소문으로 돌고 있다.

무성한 괴담 중 생각나는 것만 일단 적어 보려 한다.



첫 번째 괴담.
만약 0-5세 통합기관이 된다면 유치원의
학교 지위가 사라질 것이다?

내 기준 괴담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이 말이다.

현재 유치원은 교육기본법, 유아교육법에 의해

학교로 운영되고 학교에 적합한 시설 및 운영,

교원양성과정을 거친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원만이 유아들을 가르칠 수 있다.

특히 공립유치원은 혹독한 임용고사까지 거친다.


하지만 제3의 통합기관으로 합쳐지고

만~약에 그 통합기관이 법적으로 학교가 아니라면?

현재 유치원보다 질 높은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학교가 아니면 설립 목적 자체가 교육

과는 거리가 먼 기관이 되기 때문이다.


기관의 기준과 운영은 혼돈 속에 빠질 테고,

학교가 아니면 수업일수조차 보장되지 않을 테니

정말 교육이나 아이들의 발달과 상관없이

기관 마음대로 학부모의 구미를 당기는 기관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기관에 갇혀 생활하게 될 거다.


가령 영어, 중국어, 발레, 악기, 줄넘기, 한문 등등....

엄청난 사교육의 영역이 질서 없이 들어오게 되고

당연히 부모들은 우리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특성화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발달에 맞지 않는 특성화교육이 판을 칠 거다.


유아들은 그 나이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회경험과

신체, 사회, 언어, 정서... 발달 수준은 고려되지 않은

‘겉보기에 그럴듯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그게 교육인지도 모르겠다.

교육은 바람직한 성장과 발달인데,

0~5세 어린 나이부터 놀이인 척하는 발달에 맞지

않는 학습을 하게 되면 제일 힘든 건 아이들이다.

아마 특성화 교육으로 하루가 가득 찬다면,

교사는 특성화 시간에 맞춰 인솔하는 유아 매니저의

역할 정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괴담.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의 자격이 혼돈에 빠진다.

나는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했고, 유치원 정교사 자격의

교원양성기준이 보육교사 자격에 비해 월등하게

까다롭기 때문에 사실상 보육실습만 추가로 다녀

오면 보육교사 자격증을 덤으로 취득하는 것이다.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고 대형 재단 어린이집에서

보육실습까지 마쳤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보육 전문성은 없다...

유아임용고시생 시절에도 유치원 교육과정을

줄줄 읊고, 마치 발달 챗GPT처럼 유아의 발달과

발달에 적합한 교육에 대해 공부했지만

영아에 대해서는 전공했다 말하기 민망한 정도다.




실제 내가 영아 보육을 전공한 게 아니기도 하다.

만 3-5세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 어린 영아는 당연히 돌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치 중학교 선생님이 교과 지식은 더 뛰어날지언정

초등학교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것과 같다.


유아교육을 하기 위해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고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실습하고 연구해서

유치원교사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보통합이

되었으니 고작 보수교육 몇 시간을 듣고

영아 보육을 담당하라고 하는 건

한식요리가 전문인 사람에게 레시피 몇 개 알려주고

중식 주방장을 하라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영아와 유아는 햇수로 몇 살 차이 안 나지만,

발달적 차이는 천지차이이다.

0세는 누워서 분유 먹어야 하지만

5세는 급식 잔반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영유아 발달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한 군데에서 0-5세를 다 전담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아?‘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 있다.

하지만 0-2세 영아와 3-5세 유아는 발달 차이가

너무나 크고, 필요한 교육적 지원도 차원이 다르다.

아예 다른 전문 분야이다.


보육교사와 유치원 교사들에게 고작 보수교육

몇 시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서로의 부족한 전문성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아 보육이, 유아 교육이 겉으론 쉬워 보일지언정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영아보육과 유아교육의 자격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자칫 대한민국 교원양성체제 전체의 공정성을 흔들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일단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세부 진행 사항을 알 수 없으니 교원자격체제가

고려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깜깜이 상황이다.



세 번째 괴담.
유보통합으로 이득을 보는 건 기관장뿐이다.

공립유치원은 학교의 운영을 위한 기본 운영비와

유아 1명당 지원되는 ‘유아학비’를 가지고 운영한다.

유아학비는 수익자 부담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원래는 유아(부모)에게 직접 주어져야 하지만

기관에게 유아 수만큼 유아학비 예산이 내려오는

방식으로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엄연히 따지면 유아와 학부모의 돈이기 때문에

공립유치원에서는 유아학비를 유아를 위해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매 분기 계산기를 두드린다.

10원 한 장 남기지 않고 모든 금액을 아이들의 학비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단 유아학비 행정 처리를 모두 교사가 담당하느라

행정 직원 역할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불공정한 점은 사립유치원에 유아학비가 훨씬

많이 지원된다는 점이다. 무려 인당 28만 원이다.

공립유치원 유아는 10만 원을 지원받고

사립유치원, 어린이집 유아는 28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공립유치원에서 아이들의 학습 준비물, 교재교구,

체험학습 등을 유아학비를 활용해서 풍족하게

지원하는데도 학비가 남는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직접 유아학비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뼈저리게 느끼는 점이다. 매번 아이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더 해줘야 학비를 다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2.8배에 달하는

유아학비를 지원받으면서, 일부 기관에서는 급식이

부실하고, 일부 기관에서는 학습자료가 부족해

교사들이 사비를 쓰는 일이 발생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학부모들이 여전히 원비를

몇십 만원씩 내고 있기도 하다.

대체 그 학비는 어디로 갔을까? 알 수 없다.


사립 초, 중, 고는 학교법인이지만

사립유치원은 사인이다. 개인 사업자에 가깝다

민간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이다.

한 기관장이 여러 기관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유보통합에서 확실한 점은 무상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보다 많은 예산을 기관에 지원한

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산을 많이 지원한다고 해서

그 돈이 투명하게 아이들에게 갈지는 미지수다.

학교법인처럼 사소한 회계까지 감사할 수도 없다.


사인이니까. 이건 개인의 사업이며 밥그릇이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논란이면 유보통합에 대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공개할 만도 한데,

여전히 현직자들과 대중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유보통합 되면 무상교육 된대

유보통합 되면 국가에서 아이들을 키워 준대


이런 피상적인 내용들만 떠돌 뿐이다.


무상교육이 되는 건 좋지만, 무상교육 예산으로

아이들이 아닌 다른 이가 혜택을 보는 건 부당하고


맞벌이 가정의 어려움과 양육 기피현상은 어쩔 수

없지만, 국가에서 단체로 키운 아이들이 과연

사회정서적으로 건강한 발달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보통합은 모든 게 의문이다.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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