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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n 18. 2023

유치원 교사‘스럽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치원 교사의 모습

내 직업이 ‘유치원 교사’ 임을 밝히면

대답을 들은 사람은 보통 감탄을 한다.

이유는 내 외모와 말투, 행동이 유치원교사 ‘스럽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더 솔직히는 내가 거울을 보고, 내 목소리를 들어도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정말 ‘유치원 교사’의 사회적 이미지에 완벽히

부합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다.

비록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작은 체구에, 순한 인상의 동그란 이목구비,

높은 톤의 리듬감 있는 목소리와 말투,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 손재주가 좋은 특징을 가졌다.


지금은 이런 내 모습을 개성으로 여기지만,

특히 외모와 목소리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주 큰

콤플렉스였다.

단호하게 외적 특징과 목소리 덕에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략 유치원생 후반에서 초등학교 입학 정도의

시기였다.

나는 내 외모와 행동과 취향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예쁜 척한다.’ ‘귀여운 척한다.’ ‘만만하다.’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공주병’의 전형적인 대표 케이스로

친구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눈치챘다.

예민함이 힘을 발휘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고

평가될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공주병 걸린 친구를 싫어하니까.


그렇게 사소한 말과 행동도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어린이가 됐다.

그런데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는

날 바꾸어 타인에게 맞출 능력까진 없었나 보다.

결국은 굉장히 말수가 적고,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내 사회적 기술은 발달할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친구의 “야 너 공주병이냐 왜 예쁜 척하면서 말해? “

한 마디에 겁을 먹고 친구와 어울리기를 포기했다.

스스로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은 즐겁다.’라는 개념을

몸소 느끼지 못한 채로, 배우지 못한 채로 긴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친구보다 책이 편하고 즐거웠으니까!




점점 성장하며

내 작은 체구와 순한 인상, 높은 목소리, 리듬감 있는

아이 같은 말투들이 사회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반대의 모습을 가진 사람에 비해 확실히

만만하게 대하고, 내가 가진 능력을 의심했다.


술에 취한 사람은 거리에서 가장 약해 보였는지

자주 내게 시비를 걸었다.

도를 전도하는 사람들은 앞질러간 친구는 그냥 두고

굳이 내게 와서 말을 건다.

지금도 신논현역에서 강남역까지 걸어가는 찰나에

얼마나 말을 거는 사람이 많은 지 모른다.

아르바이트생 시절, 동료와 함께 일했는데

손님들은 언제나 싫은 소리는 나에게 와서 했다.

언제나 동료가 한 마디 하면 상황은 정리됐다.




그러다 유치원 교사가 되었고

내 모든 외적인 특성은 ‘바람직한 것’이 되었다.

유치원 교사로서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작은 체구는 아이들과 눈높이가 맞다는 이유로,

순한 인상은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는단 이유로,

목소리와 말투는 유치원 교사의 정석 수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어쩜 선생님은 유치원 교사스러운 물건만 가지고

다니세요? “말까지 듣곤 했다.


그렇게 내 평생의 ‘약점’들은

유치원 교사가 되고 나서 ‘바람직한 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치원 교사 ‘스럽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와 특성들은 ‘약한 것’인 것일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은 순하고 말 잘 듣고 만만한 유치원 교사가

필요한 걸까?

날 약자로 만드는 내 특징들이 정상으로 여겨져

한때는 ‘난 정말 타고난 유치원 교사인가 봐!’라며

기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매년 나를 초임 교사로 착각하는 학부모가 있다.

교사로서의 소견을 교육적 전문성을 덧붙여 말하면,

‘대학 갓 나온 젊은 아가씨의 생각’ 정도로 여긴다.

유아교육에 대한 전문성 만은 부끄럽지 않은데,

이 분야의 최고는 절대 아니지만 유아교육에 애정을

갖고 꽤 높은 수준으로 공립유치원에 온 사람인데!


교사로서 교육적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새 학기엔 그저 어리고 순해 보이는 선생님을 신뢰

하기 어려운 학부모님들과 긴장의 시기를 보낸다.

심지어 화가 나 폭행하려는 학부모도 만난 적 있다.

폭행당할 뻔했던 그날 생각했다.

“나를 정말 아이의 담임교사로 여기는 게 맞나? “

“내 몸이 좀 더 크고 건장했어도, 웃는 얼굴상이

아니었어도 힘으로 해결하려 했을까? “


유치원 교사는 사회적으로 약하다고 여겨지는

특성을 가진 매우 약한 직업이었다.

교육자라기에는 내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갔다.

당장 무시당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교육자로서의 인정과 존중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적어도 유치원 안에서는 약자가 아니라

평범한 구성원이길 바랐다.

하지만 몇 명 되지 않는 적은 유치원 구성원

중에서도 교사는 참 약한 존재였다.

보통 내부에서 묵살되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내려면

흠집을 잡지 못하도록 내 일은 더 완벽히 해내고

더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 했다.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유치원 교사의 이미지,

사실은 약자의 특성을 계속해서 ‘바람직한 것’으로

포장하고 권유했다.

유치원 교직문화에서 여기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나를 바꿀수록 유치원 교사인 나는 약해졌다.

아이들에 치여, 학부모에 치여, 관리자에 치여,

교육청에 치여, 사회적 시선에 치여 지치곤 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약할지언정, 누구보다 강하다.

약한 외적 특성 덕분에 하도 치이고 살았기에

나를 잘 지키고, 또 나를 지킬 만큼의 능력을 키웠다.

그래서 내 모습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센 척하며 지내보기도 했는데 많이 힘들어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가장 덜 힘들다.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여기서는 약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모순되는 건 약한 모습에서 벗어날수록

유치원 ‘교사다운’ 모습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참 혼란스럽다.


나는 유치원 교사의 정석 같은 모습인데,

사회적으로는 약한 사람으로 여겨져 살아왔고,

그런데 그게 유치원에서는 또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럼 유치원 교사는 약할수록 교사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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