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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l 19. 2023

내가 영아보육교사가 된다면

자신이 없는데 사명감은 있을까

나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다.

좋게 보면 주관 뚜렷하고 나쁘게 보면 제멋대로다.

이런 나에게 무조건 ‘호’인 분야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유아교육이었다.

좋아하고 관심 있기에 더 즐겁게 잘하고 싶었다.

애정을 갖고 힘써온 만큼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자신감도 있고 사명감도 있다.


하지만 영아보육은 불호다. 그것도 매우 확실하게.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유아는 자신 있는데

몇 살 차이 안나는 영아는 자신 없다면

전문성 있는 우수한 교사가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답해줄 수 있다.

평생 제가 유아 교사라고 생각했지
영아를 돌보며 살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우수한 영아교사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영아반이 불호가 된 계기는 확실하고 간단했다.

보육실습을 영아반에서 했기 때문이다.

영아반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지옥 같았다.

유아반이 훨씬 많은 대형 재단 어린이집에서

실습을 했고, 유아교육학과는 보통 유아반으로

배정된다는 카더라가 있었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유아교육 전공했으면 영아는 당연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막상 영아반에 투입된 유아교육학과 학생은

지금까지 대학에서 배운 건 하나도 쓸 수 없었다.


영아반에서 실습한 소감을 단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진짜 현실의 단체육아’였다.





영아반에 실습생으로 들어간 첫날 깨달았다.

아기 돌볼 손길이 부족해서 실습생을
영아반에 보냈구나.


영아에 대한 전문성이나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철저히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보모였다.

영아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놀잇감 치우고,

놀이터 한 번 갈 때마다 옷 갈아입히고,

배변훈련하는 영아들 데리고 화장실 다니고,

또 옷 갈아입히고, 우는 아이는 안아서 달래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부터 나가는 영아들이 혹여

싸우면 일단 물리적으로 떼어놓기 바빴다.

낮잠 시간엔 이불 펴고 이불 개고, 잠투정 받아주고


내 지도교사는 아이들 상대로 손유희 몇 번 하면

그게 수업이라고 했다.

옷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변 훈련을

하는 것이 수업이라고 했다.

부분수업을 계획하며 교육목표를 고민하는 나에게,

그 시간에 차라리 손유희를 연습하라고 했다.





지도교사는 내게 조카나 동생 돌본 적 없냐며

유아와 영아는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유아만 알지, 영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졸업하면 꼭 유치원으로 가요!

난 말이 안 통하는 영아들과 상호작용이 서투르고,

그렇다고 해서 아기를 보기만 해도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들 귀여운 재미에 버틸 수조차 없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 아기들의 양육자인가?’ 싶었고

1주가 가고, 2주가 가도 영아반 보육교사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나는 영아반에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무력감.

나에게 이 전공과 직업이 전혀 안 맞는다는 좌절감.


기어코 실습 중도포기를 고려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기꺼이 도전하고 한번 시작한 건 결과가

어떻든 끝을 보고자 하는 성향이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이 좌절감을 버틸 수 없었다.


실습을 중도포기하면 잃는 것은 보육교사 자격증,

그것 하나뿐이었다.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나는 영아 돌봄에 관심도, 아기를 예뻐하지도,

날이 갈수록 상호작용이 늘지도 않았고

이 영아반 실습생이라는 역할에 부적응했으니까!


다행히 함께 실습하던 동기의 설득으로 보육실습을

끝까지 버텼지만, 보란 듯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유치원 교생실습 나가보고, 유아교육도 안 맞으면

그때 정말 이직을 고려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유치원 7세 반으로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생각 외로

매 순간이 즐거웠다. 말이 통하는 아이들과의

상호작용도 재미있고, 수업을 설계하고 해냈을 때의

쾌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영아 돌봄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유아교육에는 완벽하게 적응했다.

실습 유치원의 모든 선생님들께서 유아교육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며 극찬을 해주시고,

힘든 실습 과제도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할 준비라고

생각하며 거뜬히 해냈다.

처음으로 내가 이 유아들의 담임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현실의 유치원교사는 나이가 들고 경력이 많아지면

사립유치원에서 채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고경력 유치원 교사는 어린이집으로

취업을 하게 된다

출발은 유아교육이어도 끝은 영아를 돌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는 유아와 함께하고, 유아교육을 하고 싶었다.

영아 돌봄은 전혀 원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공립유치원 유아 임용고시에 매달렸다.

‘유아’ 교사를 아무 걱정 없이 하기 위해서!




최근 유보통합을 둘러싼 여러 의견을 듣기 위해

토론회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어제도 토론이 열렸는데 국공립유치원연합회에서

‘0-5세를 모두 담당할 수 있는 게 우수한 교사’

라는 말이 나왔다.

나에게는 저 말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더 넓은 분야를 할 수 있어야 교사

라는 말로 들려 당황스러웠다.



전문성이란 건 특정 분야에 대한 우수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주어진 것을 다 잘 해내야 우수한 교사라니

나와는 전문성, 전문가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랐다.

내 생각에 주어진 걸 다 해내야 우수하다는 관점은

자신을 고용주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 수행하는 존재.




물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견해를 존중하지만

개인의 관점이 ’ 국공립유치원연합회‘라는 단체의

이름 아래에서 국공립유치원교사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 같아 매우 불편했다.

심지어 국공립유치원연합회는 국공립 유치원

교사보다는 관리자들이 주를 이루는 단체인데

겉보기에는 교사가 주를 이룬 단체처럼 보인다.


0-5세를 다 소화해 내야 우수한 교사라는

개인 혹은 연합회라는 관리자 단체의 발언은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공립유치원교사로서 절대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다.

물론 내 의견 역시 공립유치원교사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나는 영아반을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대단한 것을 넘어 존경스럽다.

나는 절대 해내지 못한 일을 하고 계시니까,

영아반에서 때로는 기쁨을 얻고 전문성 있게 역할을

수행하고 계시니까!


나는 결코 영아 전문가 선생님들처럼 해낼 수 없다.

이렇게 영아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데,

교육 몇 시간 더 듣는다고 자신감이 솟아오를까?

영아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데 사명감은 생길까?





혹시나 내가 유아 전문임에도 영아교사가 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영아들과 나에게 서로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난 유아 전문가로서 유아교육을 원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전문분야도 아닌 영아반을 주고

‘우수하지 못한 교사’라고 한다면

그건 영아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행위가 아닐까?


영아를 위해서는 영아 전문가

유아를 위해서는 유아 전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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