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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l 13. 2023

이거 취업사기 아니야?

저는 분명 ‘유치원 임용고사’를 보았는데요...

결국 그렇게 걱정하던 소식이 들려오고 말았다.

유치원 정교사 교원자격증과

보육교사 자격증을 통합할 예정이라는 소식


누군가는 권위의식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시간과 자본과 노력을 통해

같은 자리를 원하는 누군가를 이기고 시험에 통과해

자격을 얻었는데 한 순간에 물거품이라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마저

앗아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살아온 방식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던 진리들도 모두 의심스럽다.


지금은 2023년이며,

자본주의 사회이고 기회비용을 지불한 경쟁을 통해

희소성 있는 가치를 얻는다.

국가에서는 국가의 공교육을 책임질 교육자를

공개경쟁시험으로 뽑았고, 합격자들에게는 정년

까지 안정되게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교육공무원의 정체성을

바꾸어 버린다.


한마디로 취업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5,6,7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기

위해 ‘유아교육학’을 전공했고 학사를 취득하였다.

교원양성과정을 거쳐 교원자격증도 취득하였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내가 가진 교육 전문성을 펼치기 위해 갈고닦았다.

갈고닦은 결과 공립유치원이라는 교육기관의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정정당당하게 기회비용을 들이고 경쟁해서

유아교육전문성을 인정받고 교육할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국가 수준 유아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공립유치원 교사‘는 유명무실해질지도 모른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을

국가에서 보존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예 공립유치원은 고려되지 않은, 철저히 배제된

채로 유보통합이 이루어지는 느낌도 든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공립유치원이 유아교육계의 소수집단이라서?

대한민국 정서상 공교육 선호도가 낮아서?

아니면 공립유치원의 교원들은 공무원이기에

파업도 하지 못하고 로비도 하지 못하니까???


비록 소수집단이라도, 투명하게 국가의 소속 아래

모든 운영비를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교육기관이다.

대한민국 정서상 사교육 선호도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의 입지를 없앤다는 것은

국가의 교육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공립유치원 교원이 정치적인 개입이나 경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해서 투명한 존재 취급당한다면

교육이 정치와 경제논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양이 된다.



공립유치원 교원들은 한순간에 교육할 권리를 잃고

국가의 지시대로 원치 않은 돌봄을 하게 될 수 있다.

돌봄을 하기 위해 그렇게 교육 전문성을 높인 걸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에게

약속한 지위를 앗아가 버린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얘들아 세상은 정의롭지 않단다.
너희가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키워도
한 순간에 그 대가를 뺏어간단다.

이렇게 말해야 할까?




공립유치원 교원들은 유아교육 역량을 경쟁해

교원 지위를 취득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통합을 할

테니 돌봄을 담당하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돌봄은 역량을 경쟁할 필요 없는 부분인가?


왠지 모르게 유아교육이며 돌봄이며

양측의 전문성 모두가 훼손되는 기분이 든다.

과연 유치원에는, 어린이집에는 미래가 있을까?

그저 국가가 관리하는

마치 사육장 같은 돌봄 수용소가 되는 건 아닐까?




내 공립유치원 교원 지위가 흐릿해지는 것도

그동안 애정을 갖고 높여온 유아교육 전문성도

아이들과 교실에서 쌓은 교육경험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나는 그저 취업 사기를 당한 사람이 되었다.

선택한 직군마저 박탈당하는,

나의 정체성과는 관계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교육공무원 아니고 공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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